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
“저 서른두 살이에요. 회사 다니다가 택시 일 시작했어요. 재미있어요. 12월엔 2주나 쉬었는걸요.”
“쉬어도 회사에서 아무 말 안 해요?”
그는 ‘공부 머리’가 없는 것 같아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은 있어야 할 것 같아 검정고시를 본 뒤 전문대에 갔고 경비보안업체 직원이 됐다. 하루 16시간 근무에 박봉. 다음으로 구한 직장은 인쇄소였지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운전석 옆 텀블러를 들며 그는 말했다. “술 담배 안 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과 지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고민 끝에 택시 운전을 택했다. 개인택시 면허를 따려면 택시회사에서 3년간 일해야 하는데, 매일 사납금 15만 원을 내는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잘 해보고 싶어서 꼬박 3년을 버텼다. 서울시 택시 면허는 6800만 원.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다. 대출을 받아 택시면허와 차를 샀다. 서른 살, 그렇게 개인택시기사가 됐다.
호쾌하게 운전하는 그의 모습이 노량진 고시촌이나 도서관에서 화석처럼 앉아 공부하고 있을 또래들과 겹쳐졌다.
“요새 사람들이 흙수저나 헬조선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대출금을 거의 갚았다. 택시 면허 가격도 9600만 원으로 뛰었다. 은퇴자는 물론이고 구조조정에 내몰린 중년까지 개인택시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좋겠다’고 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면허를 팔 생각이 없으니까요. 평생 개인택시만 할 거거든요. 사실 전 결혼할 생각도 없어요. 요샌 돈이 있어야 행복하지 않나요. 주변을 봐도 결혼해서 싸우기만 하고….”
그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했다.
“주식고수 ○○○라고 아세요? 종잣돈 5000만 원으로 1000억 원을 벌었대요.” 신호를 받자 그는 휴대전화로 증권사 트레이딩 화면을 보여줬다. 지난주 250만 원, 지지난주 180만 원의 차익을 남겼다. “제가 공부 머리는 없어도 종목 분석하고 베팅하는 머리는 있나 봐요. 저도 1000억 원 벌고 싶어요.”
야무지게 사는 그가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왔더라면 다른 대답이 나왔을까. 돈 벌어도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그는 흙수저인가 아닌가. 돈 버는 것 이상의 행복은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이 나라는 헬조선인가 아닌가. 집 앞에서 택시요금을 건네며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했더니 그는 “돈 많이 버세요”라고 화답했다.
김유영 오피니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