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동양, 체스는 서양을 대표하는 보드게임이다. 바둑은 돌을 두는 착점이 361개다. 첫수를 주고받는 경우의 수만 12만9960가지다. 체스는 첫수를 주고받는 경우의 수가 400가지다. 바둑 한 판의 경우의 수는 수학적으로 단순히 계산해도 700자리 수가 되어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바둑을 기록한 역사가 200년이지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똑같은 바둑은 없었고 이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체스에서는 오래전에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 1997년 IBM 슈퍼컴퓨터 ‘디퍼 블루’가 러시아인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이 탄생한 지 51년 만이다. 카스파로프는 당시만이 아니라 약 1500년 체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카스파로프는 2003년 업그레이드된 ‘딥 주니어’와의 대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설욕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2005년 은퇴했다.
▷바둑에서는 프로 기사가 컴퓨터와 둘 때 최소한 4점을 깔아주고 둔다. 조훈현 9단은 지난해 낸 책 ‘고수의 생각법’에서 “이 네 점은 프로 기사의 창의성과 기풍의 차이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흉내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썼다. 그러나 27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맞바둑에서 프로 기사를 이겼다. 다만 상대는 유럽 바둑 챔피언인 중국계 판후이 2단이었다. 유럽 프로 바둑계의 실력은 바둑의 본고장인 한중일에 못 미친다.
▷바둑은 조 9단의 1989년 응씨배 제패 이래 한중일 중에서도 한국이 세계 최강이다. 이창호 9단에 이어 지금은 이세돌 9단이 10년째 최고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냈다. 3월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컴퓨터와 인간 바둑 지존의 대결이 벌어진다. 바둑계에서는 알파고가 과거 수준보다 나아졌다 하더라도 이 9단과의 맞바둑은 무리이며 2, 3점 접바둑이 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심적 부담도 피곤함도 느끼지 않고 복잡한 계산을 해내는 컴퓨터와의 대결인지라 결과는 속단하기 어렵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