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 ‘회화’ (1978년). 도서출판 기파랑 제공
뒤로 몸을 꺾은 근육질의 여자가 오른발을 뻗어 발가락으로 도어의 열쇠를 돌리고 있다. 열쇠 주변에 둘러쳐진 커다란 오렌지색 타원은 영락없이 빛을 발산하는 후광의 모습이다. 도어의 왼쪽에는 바닥까지 뚫린 작은 문이 반쯤 열려 있다. 아니 그건 문이 아니라 4각형의 고정 유리창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 4각형의 바닥에 제복을 입은 남자의 옆얼굴과 어깨가 보인다. 그의 어깨 높이가 아주 낮은 것으로 보아 그의 자리는 여자가 있는 방보다 두어 계단 아래에 있는 듯하다. 방바닥에는 불에 탄 신문지가 놓여 있는데, 각기 한 개씩의 빨간 화살표가 남자와 신문을 가리키고 있다. 다락방에 갇힌 여자가 발가락에 온몸의 힘을 집중시켜 열쇠를 열고 탈출하려 하는 것일까? 그래봤자 열쇠는 견고하여 열리지 않을 것이므로, 감시인은 느긋하게 뒤돌아 앉아 있는 것일까? 분명 중세 때 성화(聖畵)를 연상시키는 후광과 화살표(성 세바티아누스의 상징)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그림에서 사람들은 기필코 어떤 의미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전시 중인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회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잘리고 훼손된 인체와 뭉개지고 지워진 얼굴들에서 사람들은 악착같이 어떤 메시지를 찾아내려 한다. 존엄성이 상실된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그렸다느니, 무자비한 폭력으로 고통받는 인간상이라느니, 한낱 고깃덩이로 전락한 현대인의 소외를 표현했다느니, 급기야는 나치 수용소의 악몽을 대변했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로테스크한 그의 그림이 미스터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평범하지 않은 인생 역정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국계 아일랜드인인 그는 10대 후반에 가출하여 런던, 베를린, 파리 등의 뒷골목에서 동성애 매춘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마초(macho)적인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 말채찍으로 맞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순간 아버지에 대해 동성애적 사랑을 느꼈다고도 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왔다가 평생의 연인이 된 조지 다이어는 그의 파리 전시회 오픈 하루 전날 호텔 방에서 자살했다. 주변부적 삶과 동성애, 그리고 아버지라는 권위 밑에서의 모욕감이 그의 그림에 어둡고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그림이 사회나 역사적 폭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굳이 폭력성을 말하자면 그것은 색채의 폭력성 혹은 예술의 폭력성이지 구체적 역사나 사회의 폭력성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무수하게 그린 ‘고함 지르는 입’은 뭉크의 ‘절규’와 정반대의 함의를 갖는다. 뭉크가 어떤 공포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절규’를 그렸다면 베이컨은 단지 ‘비명’ 그 자체를 그리기 위해 작품 ‘비명’을 그렸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어떤 서사성(敍事性), 삽화성(揷畵性)으로 해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의 관심은 좀 더 미학적이고 좀 더 형식적이다. 처절하게 기괴한 형상이 어떤 철학적 비극성을 띠고 있다 해도 그것은 좀 더 높은 차원의, 좀 더 근원적인 비극성의 표현이지, 결코 현실 속 어떤 사건에 대한 고발은 아니다. 기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에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너무 동시대성만 강조하는 요즘 예술가들의 정파(政派)적 이념 과잉에 식상해서일까.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