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최근 정부가 신약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후 제약업계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제약업계가 정부에 말하고 싶었지만 꾹꾹 담아 뒀던 이야기들을 들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정말로 글로벌 신약 강국으로 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일까를,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식당 지배인에게 빈방을 달라고 주문했다. 아무래도 난상토론 식의 대화가 오갈 것 같아서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제약업계가 처한 절박한 현실을 알아 달라는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특히 신약 개발에 대한 보상책이 너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수백억 원을 들여 신약을 개발해도 국내에서부터 제값을 못 받으니 글로벌 경쟁력이 생기겠느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신약 가격 업무를 담당한다는 A 씨의 이야기다.
최근 정부가 신약 연구개발비에 대한 세제 지원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서도 A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년 전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얘기입니다. 세금 혜택은 상품을 제대로 팔고 난 후에 논의해도 됩니다. 팔아서 남아야 세금도 내고, 그래야 세금을 환급받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신약 가격만 제대로 매겨 준다면 세금 혜택은 안 줘도 좋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을(乙)’이라 불렀다. 병원에 치이고 의사에게 치이고, 그것도 모자라 약값 책정 때 다시 치인다는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정부에 대한 이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016년도 업무보고에서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았거나 해외에 수출한 신약은 가격을 책정할 때 우대하겠다고 밝혔다. 신약 전략기획 업무를 한다는 B 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복지부가 발표한 대로 쉽게 바뀌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C 씨는 “그동안 정부가 약가를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료비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면 제약사를 종용해 약의 가격부터 깎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민이 의료비에 쓴 전체 국민의료비 가운데 약 구입에 쓴 비용은 2000년 이후 증가하다 2008년 29.64%로 정점을 찍었으며 그 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에는 26.21%까지 떨어졌다. C 씨는 “약제비 비중을 1%포인트 낮추는 데 제약사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신약 가격을 높이 책정하면 정말로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까.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신약 가격을 높이 책정하면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해야 할 약제비가 늘어나 결과적으로 건보 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종사자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다만 “신약 수출에서 얻는 이득 중 일부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전환하거나,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재정을 보충하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1시간 반 동안의 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 음식은 모두 식어 있었다. 차가워진 국물을 뜨며 A 씨가 말했다.
이달 초 제약업계와 복지부가 신약 약가 책정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한다. 이번엔 해묵은 논의는 그만하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글로벌 신약 강국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어쩌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내부의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제약업계 종사자들과 다음에 만날 때는 따뜻한 만찬을 먹으며 유쾌한 잡담을 나누고 싶다.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