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두증’ 지카 바이러스 공포]
지카 바이러스는 1947년 원숭이, 1964년 인간에게서도 발견됐다. 그런데도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 늦어진 이유는 2007년까지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만 발병했고 사망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다른 대륙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 미크로네시아에서 발견됐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인간에 의한 감염도 2009년 아프리카 세네갈을 방문하고 돌아와 지카 바이러스 감염 판정을 받은 미국 생물학자가 아내에게 전염시킨 사례가 처음이었다. 감염된 모기에 물리는 것 외에도 혈액이나 성관계에 의해 전염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감염자의 80% 이상은 가벼운 발열 증세만 보이기 때문에 감염 추적이 아주 어렵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은 ‘모기 번식’을 막기 위한 대대적인 방역 작업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형편이다. 여기에 “임신을 자제하라”는 소극적인 권고로 지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인 브라질에선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최소 150만 명이라고 AP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소두증 의심 사례는 4180건으로 이 중 270건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68명은 사망했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수 2위인 콜롬비아는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가 2000명을 넘어섰다. 감염자 수는 2만297명에 이르며 이 중 63.6%가 여성, 임신한 여성은 2116명이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29일까지 전국 11개 주와 워싱턴에서 31명의 감염 사례가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은 뉴욕의 임신한 여성이라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밝혔다. 이들은 모두 중남미 방문 중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그동안 3차례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H1N1), 2014년 5월 소아마비, 2014년 8월 에볼라 창궐 때였다. 1일 지카 바이러스 확산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4번째가 된다.
○ 대처는 “모기 번식 막아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카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한 고위급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은 연내에 백신이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임상 실험을 거쳐 치료제가 시장에 나오려면 빨라야 10월이다. 임신부를 상대로 백신 임상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되면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치료제에 의존할 수 없는 세계 각국엔 비상이 걸렸다. 중남미 지역에선 이집트숲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방역 작업에 나섰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지카 바이러스의 중국 유입 가능성에 대비해 경보 체계를 가동했다. 말레이시아는 임신부들에게 중남미 지역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싱가포르는 공항과 항만 등 출입국 지역에서 지카 바이러스 감염 의심 환자가 들어오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의심 증상이 있는 사람은 당국에 신고하도록 조치했다.
○ “임신 자제하라”…피임·낙태 논란
중남미 지역엔 ‘임신 자제령’이 내려졌다. 콜롬비아와 자메이카 보건당국은 젊은 부부들에게 6개월간 피임하라고 권고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여성들에게 2018년까지 임신을 연기하라고 권했다.
이곳에선 피임과 낙태를 하려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문제는 중남미 지역의 대부분이 가톨릭 국가여서 낙태가 불법이라는 점이다. 엘살바도르에서 낙태한 여성은 징역형에 처하며 콜롬비아나 에콰도르, 자메이카 등에서 여성이 성폭행으로 임신한 경우에만 낙태할 수 있다. 브라질도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경우, 임신부 생명이 위험한 경우, 태아가 무뇌증 등으로 생존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 브라질 보건당국은 소두증이 낙태 허용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의 연관 관계가 높은 만큼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의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피임도 장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150여 개국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지카 바이러스 감염 임신부가 불법 수술이나 시술을 받다 사망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이 단체는 감염 여성에게 낙태 수술을 허용하고 여성들의 피임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