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어설픈 자세로 바를 넘는 도널드 토머스. 그는 높이뛰기 입문 1년 만에 세계를 제패했다. 사진 출처 올애슬레틱스닷컴 홈페이지
이종석 기자
이 학교 농구 선수 도널드 토머스가 자신의 점프력과 덩크슛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토머스의 키는 188cm로 농구선수치고는 큰 편이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토머스의 자기자랑을 식당에 있던 같은 학교 육상부 높이뛰기 선수가 들었다. 그리고 바로 내기를 하기로 했다. 덩크슛이 아닌 육상의 높이뛰기 방식으로 내기를 했다. 높이뛰기 선수는 토머스가 198cm 이상은 절대 넘지 못한다는 데 걸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토머스는 체육관으로 갔다. 이때까지 토머스는 높이뛰기를 해 본 적이 없다. 농구화를 신은 채 양다리를 파닥거리며 점프한 토머스의 자세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높이 198cm의 바(bar·가로대)를 단번에 넘어 내기는 싱겁게 끝나 버렸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토머스는 이왕 판이 벌어진 김에 바를 5cm 더 올려 또 뛰었다. 203cm 높이를 가볍게 넘었다. 이번엔 10cm를 더 높였다. 213cm도 가뿐하게 넘었다.
자기 종목에서 일가를 이룬 선수들이 드문드문 하는 말이 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멋있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선수들은 노력이 부족했다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런 말에 필자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도구 없이 오로지 몸으로 겨루는 기록 종목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최근 30년간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 진출자의 거의 전부가 서아프리카계 혈통이라는 걸 ‘노력’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농구 대통령’ 허재가 프로농구 KCC 감독을 맡고 있던 2010년 3점슛으로 구단 프런트와 내기를 한 적이 있다. 허재가 3점슛 10개를 던지기로 했고, 프런트는 7개 이상은 못 넣는다는 데 걸었다. 허재가 내기에서 이겼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허재는 10개를 던져 10개를 다 넣었다. 당시는 허재가 현역 선수에서 은퇴하고 6년이나 지난 뒤다. 이런 걸 어떻게 노력으로 설명하나….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다.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버리(미국)가 바를 향해 달려가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허리를 뒤로 젖혀 몸을 n자 모양으로 말더니 머리가 먼저 바를 넘고 이어 양다리가 동시에 바 위를 지나갔다.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높이뛰기 자세에 관중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이야 모든 선수들이 일명 ‘배면뛰기(포스버리 플롭)’로 불리는 이 자세를 택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렇게 뛰지 않았다. 그때는 모두 허들을 옆으로 넘듯 ‘가위 뛰기(시저스 점프)’를 했다. 세계 60위 안에도 들지 못했던 포스버리는 멕시코에서 올림픽 기록(224cm)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약력이 똑같은 경우라도 배면뛰기가 가위뛰기보다 역학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나중에 증명이 됐다.
포스버리는 자나 깨나 높이뛰기만 생각하는 노력 끝에 배면뛰기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을까?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참관하기 위해 포스버리가 한국에 왔었다. 그때 만나 물어봤다. 어떻게 그런 자세로 뛸 생각을 했는지…. “체조 선수들을 보고서 힌트를 얻었다. 왜 아무도 (나보다 먼저) 생각해 낸 사람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배면뛰기를 지극정성의 궁리 끝에 창안했다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토머스에 대해 궁금해할 독자가 있을 것 같아 덧붙인다. 신체검사에서 토머스는 점프할 때 스프링 역할을 하는 아킬레스힘줄이 높이뛰기 선수들의 평균치보다 훨씬 긴 것으로 나왔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