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이 좀 그만 괴롭혀. 술 먹었으면 잠자코 잘 것이지, 왜 자꾸 개는 괴롭히는 거야."
오늘도 와이프의 타박을 들으며 김모씨는 잠자리에 든다. 40대 중반 김모씨는 1주에 2, 3차례 가량 저녁자리를 갖는다. 어느 때인가부터 집에 오면 반려견 아름이에게 가서 애정 표현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미 자고, 도끼눈을 하고 있는 와이프 모습에 술냄새를 풍겨 가면서 아이들 얼굴 보는 것도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반면 아름이는 김모씨가 들어올 때면 항상 반겨준다. 술냄새가 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평일 산책은 어렵더라도 주말 산책은 어느새 김모씨의 몫이 됐다. 평일 반가와해 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말에 외출시켜주는 것이다.
처음 개를 데리고 나갔을 땐 그 자신 매우 쑥스러웠다. 사람들과 눈빛을 마주치기 싫어 아름이와 땅만 봤다. 개가 귀엽다면서 다가와 말을 걸으려 할 때도 속으론 좋으면서도 차마 입은 떨어지지 않고 얼굴은 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해를 지나고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고 보니 관찰한 것 하나가 있다. 산책을 하다보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50 이상인 중년의 남성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여성 중에는 중년 여성보다는 젊은 여성이 더 많았다.
지난 주말엔 유난히 그런 아저씨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 50대 남성이 어깨에서 반대편 허리로 가로질러 매는 슬링백을 한 채, 한 손에 말티즈를 끌고 한 손에 방금 치운 듯한 배변 버릴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슬링백은 예전 책보따리를 연상하면 쉽다.
그런가 하면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초보 산책가인 듯 바람에 날리는 검은 비닐 봉투를 한 손에 든 채 개를 뒤따라가는 50대 중반의 말쑥한 아저씨도 보였다. 말쑥한 모습에 검은 비닐 봉투라니. 게다가 말티즈는 천방지축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 들었다.
여유롭게 푸들을 제어하는 50대 아저씨도 빠지지 않았다. 산책을 자주 한 듯 목줄을 짧게 쥐고 주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 능숙하다. 목줄을 짧게 잡고 있으면 대부분 상황은 통제 가능하다.
50대 박모씨도 평소 주말에 산책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지난 주말엔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는 큰 아이와 함께 하는 행운을 잡았다. 대학에 들어가면 갖기 힘든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빠들은 외롭다. 특히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 처지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디 하소연할 때가 없다. 이럴 때 항상 자신을 반겨주는 개는 힘이 된다. '개에게 사랑을 퍼붓는 아빠를 이해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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