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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레이더] 테일러 족저근막염 때문에…흥국생명, ‘트라이아웃 규정’ 희생양

입력 | 2016-02-02 05:45:00

족저근막염으로 흥국생명의 시즌 운명을 가름할 5라운드 중요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테일러. 힘들게 시즌을 꾸려가던 팀에 찾아온 불운은 완벽하지 못했던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제도의 허점을 보여준다. 과연 흥국생명은 어떤 해법을 찾아낼까. 스포츠동아DB


26개의 뼈와 관절신경이 얽혀있는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기관이다. 이 발을 보호하는 것이 발바닥을 감싸는 단단한 막이다. 스프링처럼 뛰거나 걸을 때의 충격과 체중을 흡수해준다. 발을 많이 쓰면 발뒤꿈치 부분에 탈이 나면서 염증이 생긴다. 족저근막염이다. 육상선수나 축구선수처럼 많이 뛰어야 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박주영(FC서울)도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이 병 때문에 한참 고생했다.

족저근막염은 참 고약하다. 심한 경우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쉬어주면 저절로 낫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인다. 꾀병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는 이유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발에 불이 난 듯 아프다고 한다.

● 테일러의 족저근막염 때문에 플레이오프 비상등 켜진 흥국생명


플레이오프 티켓을 앞에 두고 흥국생명에 탈이 났다. 외국인선수 테일러의 발바닥 때문이다.

최근 2연패에 빠졌다. 테일러가 결장한 경기에서 모두 졌다. 테일러는 족저근막염으로 뛰지 못했다. 중요한 시기에 외국인선수가 결장하자 흥국생명 선수들도 충격을 받았는지 플레이가 느슨해졌다. 통증의 정도는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만 멀쩡해 보이는 선수가 결장하자 구단과 코칭스태프는 답답해졌다. 사실 지금쯤이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부상과 통증을 안고 있다. 10월부터 대장정을 펼쳐온 선수들의 몸이 정상인 것이 이상할 정도로 V리그는 힘들다. 흥국생명은 테일러가 가능하다면 경기에 나서주기를 내심 바란다. “이재영도 비슷한 증세가 있지만 참고 뛴다. 우리 선수들이라면 뛸 것”이라고 구단 스태프는 말했다.

물론 테일러는 다르다. 외국인선수에게 국내선수들과 같은 투지와 팀을 위한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다음 시즌 다른 리그에서 또 선수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테일러의 입장에서 보자면 몸이 재산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뛰기 싫을 터다.

문제는 이 족저근막염을 놓고 한국과 미국 의료계의 판단이 달랐다는 것이다. 국내 의료진은 “2~3주 정도면 가능하다”고 했다. 이 기간 내라도 통증이 사라지면 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자신의 의료기록을 미국에 보냈다. 4~6주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다. 테일러는 그 판단을 더 믿는다. 무조건 4주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두 나라 의료진의 진단에는 2~3주의 오차가 발생하지만 그 바람에 팀과 테일러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골짜기가 생겨버렸다. 시간이 급한 코칭스태프로서는 애가 더 탈 수밖에 없다.

● 무릎이 아프지만 내색도 못하고 눈치만 봤던 캣벨의 헌신

GS칼텍스 캣벨은 시즌 내내 무릎 통증을 안고 있다. 2년 전 무릎 수술을 받았다. GS칼텍스는 트라이아웃 때 그 사실을 알았지만 완치됐을 것으로 믿고 선택했다. 오산이었다. 시즌 준비과정에서 무릎은 탈이 났다. 구단으로선 낭패였지만, 대타를 구하기 어렵다고 보고 시즌에 돌입했다.

캣벨은 무릎 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에 가서 물을 빼고 온다. 센터라 윙 공격수보다는 코트에 서는 시간이 짧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도 힘들어했다. 몸 상태를 봐가며 경기에 나섰고 훈련에도 가끔은 빠졌지만 시즌을 완주하고 있다. 혹시 아프다고 말하면 중도에 퇴출될까봐 내색도 못하던 캣벨이었다. GS칼텍스 이선구 감독은 그런 캣벨을 보면서 “객지에서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캣벨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 몸무게가 7㎏이나 줄었다. 그 덕분에 무릎의 부담은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무릎에서 물을 빼내는 간격이 길어졌다. 정상은 아니지만 차츰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5라운드부터 상승세인 GS칼텍스와 켓벨은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흥국생명은 반대다.

● 트라이아웃 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던 대체외국인선수 관련 조항

흥국생명은 테일러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듣지 못하자, 대체외국인선수를 급히 수소문했다. 안타깝게도 눈에 띄는 선수가 없었다. 트라이아웃 참가선수들 가운데 골라야 한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지금 누구를 데려온다고 해도 그 선수가 테일러보다 좋은 기량이라는 확신도 없어 섣불리 대체외국인선수를 선택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시간도 모자란다. 데려와서 훈련시키고 팀플레이를 맞춰볼 때쯤이면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가 가려졌을 시점이다.

흥국생명 입장에서 본다면 4라운드까지 애써서 잘 지어온 농사를 외국인선수의 발바닥 부상 때문에 망칠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흥국생명은 정말 운이 없는 경우겠지만, 트라이아웃 도입 전부터 이런 우려는 제기됐다.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선수가 소수인 데다, 대체외국인선수와 관련해 결점을 처음부터 안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에서 “남자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제도가 성공하려면 대체외국인선수에 대해 확실한 플랜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구단은 “2명 보유, 1명 출전”을 주장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흥국생명은 트라이아웃제도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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