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거장 리히터의 전작 도록 제작 책임자 디트마어 엘거 씨
디트마어 엘거 씨는 “공정성을 위해 폐쇄적, 비공개적으로 작품을 감정하는 한국 미술계의 관행은 내 상식 기준에서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디트마어 엘거 독일 게르하르트 리히터 아카이브 디렉터(58)의 말이다. 독일 현대회화를 대표하는 거장 리히터(84)의 전작 도록(全作圖錄) 제작 책임자인 그는 이곳에서 열린 ‘아트 북과 카탈로그 레조네의 현재’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전작 도록은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 놓은 도록으로 서구에선 일반화돼 있다.
‘캔버스의 뒷면, 리히터의 고유번호를 따라가다’라는 주제로 강연한 엘거 씨는 “독일에서도 가짜 서명이 기재된 리히터의 그림 위작이 한 갤러리에 전시됐다가 매매까지 이뤄진 일이 4년 전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우환 천경자 화백 등의 작품을 둘러싸고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 줄지어 불거진 위작 논란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작가와 감정 전문가 의견이 대립할 때 어느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몰아가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작가에게 주어진 저작권은 어떤 작품을 자신의 작품으로 인증할지 말지를 선택할 권리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실패작이라고 싫어해 인증 고유번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작가가 제작한 것’임이 확실히 검증된 경우에는 ‘전작 도록에 수록되지 않은 진품’이라는 감정서를 아카이브가 발급합니다.”
전작 도록을 만들고 나면 위작 관련 논란이 어느 정도 잦아들게 될까. 엘거 씨는 “실수와 조작을 완전히 막을 방법은 없다”고 답했다.
“전작 도록은 오류를 최대한 빠르게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도구입니다. 한국 미술계가 막 시작하려 하는 전작 도록 작업은, 매우 길고 힘든 시간을 견딘 뒤에야 결실을 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