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위기관리 전문가
이쯤 되면 눈치채야 한다. 직장이 날 보호해 줄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20대도 구조조정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며, 해고도 ‘유연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많은 직종은 로봇이 대체한다는 뉴스도 나온다. 몇 살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 숫자가 55세든 60세든 거기에서 현재 나이를 빼보자. 그 결과가 15 이하라면 지금 직장에서 최대한 잘 버티도록 하자. 저축 열심히 하고, 퇴직하고 치킨집을 하든지 나름의 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15가 넘는다면? 이들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나만의 직업을 어떻게 만들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직장에 다니는 상태를 직업이 있다고 말했다면, 앞으로 직업의 현실적 의미는 개인기다. 즉, 직장이라는 조직을 떠나서도 혼자서 돈을 벌며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상태가 직업이 있는 상태란 말이다. 학교 졸업 후 20∼30년 직장생활을 한다고 쳤을 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직장생활 하면서 자기만의 개인기, 즉 직업을 만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퇴직 후 모아둔 돈으로 편하게 살 수 있고, 무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개인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퇴직 후에도 작게라도 정기적인 수입을 갖고 싶고, 자기만의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 개인기를 갖추는 것은 필수이다.
최근 만난 네 사람 이야기를 해보자. A 씨는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 중이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 음식점에 취업하여 식당 경영 현장학습을 하고 있다. 요리만 잘한다고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B 군은 이번 달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미술에 재능이 있고, 목공에 대한 관심을 살려 이달 말 유럽의 한 목공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목공기술로는 대학 4년 동안 배울 분량을 1년 안에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60대 초반의 C 씨는 퇴임 후에도 제품 영업을 외주로 맡아 전문성을 발휘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40대 후반의 영업맨이었던 D 씨는 외국계 회사에서 영업을 총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진출하려는 해외 기업을 1, 2년씩 맡아 기반을 닦아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 앞의 두 사람은 자신의 개인기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조직을 떠나서도 개인기를 활용해 직업을 유지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이란 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역설적 표현이 되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조직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개인기, 즉 직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때론 불편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상사의 눈치를 보며 승진하고, 은퇴 후 생활자금을 어떻게 만들고, 치킨집을 개업할지 고민했지 자신만의 재능은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직업으로 만들지, 조직을 떠나서 어떻게 홀로 설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불편한 질문을 우리는 ‘팔자 좋은 소리’라고 치부하며 매일 직장 내 바쁜 회의 스케줄과 수많은 회식 일정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일상 속으로 일단 피하는 것이다. 직장이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다. 조직에서 밀려난 후 고민해봐야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니 이쯤 되면 직장이 아닌 직업만이 나를 보호해 줄 것임을 눈치채야 하는 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직업을 만들어야 한다. 이젠 개인기의 시대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위기관리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