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기자
지난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2013’ 라벨 그림 언론 공개 행사에 참석한 화가 이우환 씨(80)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1945년부터 매년 화가 한 명에게 라벨 그림을 의뢰해 온 이 고급 와인 가문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 초빙된 그는 “오래 기다린 기회였다”며 긴 소회를 풀어 놓았다.
행사 말미, 참석한 기자들에게 단 두 번의 질문 기회가 주어졌다. 한 기자가 “올해 초 발생한 ‘가짜 감정서 첨부 그림 경매’ 사건 이후 일파만파 확대된 위작 논란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고 물었다. 이 씨는 짤막하게 답했다.
변호사를 거쳐 정리된 위작 논란 관련 질의응답 보도자료가 2일 공개됐다. 요지는 “위작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작가”라는 것. 이 씨는 자료에서 “위작 사건과 관련해 인터뷰를 거부해 온 건 그간 몇 차례의 인터뷰 내용이 작가의 뜻이나 말과 달리 보도돼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4년 한 일간지 인터뷰 기사에는 “시장에서 나를 제거하고 작품 값을 떨어뜨려 이득 보려는 세력이 있는 듯하다. 내 작품은 고유의 호흡으로 그리기에 모방하기 어렵다”는 발언이 실렸다. 지난해 10월 한 주간지 인터뷰 내용은 “내가 눈으로 확인한 그림 중에는 위작이 없다고 말한 건데 ‘가짜가 없다’고 했다는 식으로 보도됐다. 실망감이 커 ‘중대 결심’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2005∼2014년 국내 경매 낙찰 총액 1위(약 712억 원)의 인기 작가다. 위작 논란이 벌어진 것은 5년 전부터다. 그때마다 ‘작가가 적극 나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감정 전문가는 “이 씨는 2013년 위작 논란이 일자 자신의 작품 감정 권한을 오랜 거래처인 두 화랑에만 제한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제 와서 ‘내가 최대 피해자’라고 하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경매에서 가짜 감정서라는 뚜렷한 위조 증거가 포착돼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2주 뒤에야 이 씨는 변호사를 통해 “위조품이 존재한다”고 밝히며 대응을 시작했다.
이 씨는 “위작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작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랜 위작 논란으로 인해 피해를 본 컬렉터들이나 미술 시장 위축에 대한 염려는 답변 자료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가 우선 할 일은 늑장 대응으로 위작 논란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한 자신의 책임을 되새기는, 진심 어린 사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