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한옥 심원정사(1992년 건축). 염기동 한옥전문사진가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그 도본이 너무 엉성하여 쓸 수 없기에 이제 새로 고쳐 그린 것을 보냅니다. … 당(堂)은 정남향으로 하여 예를 행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고, 재(齋)는 서쪽 정원을 마주 보도록 하여 아늑한 정취가 있도록 하고자 하며 그 나머지 방, 부엌, 곳집, 대문, 창 등도 모두 그 뜻이 있는 것이니 그 구조가 바뀔까 염려됩니다.”
퇴계가 그토록 정성들여 지은 도산서당은 온돌방 한 칸, 마루 한 칸, 부엌이 전부였다. 하지만 퇴계는 그것마저도 “장황하고 고대하게 되었다”며 부끄러워했다고 제자 이덕홍은 기록했다. 이렇게 지어진 도산서당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비의 엄격한 자기 수양과 학문 연마를 위한 공간의 본보기로 인식되고 있다.
집짓기에 들인 정성은 대단해서 집의 배치며, 마당에 놓이는 작은 돌의 위치며, 높이에 이르기까지 조화로움에 세세히 마음을 썼다. 현장에 대장간을 설치할 정도로 전통기법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난방 보일러며 화장실과 부엌을 현대식으로 설치해 시대와의 조화도 허술히 하지 않았다.
안주인 윤용숙 여사는 생활의 근거가 서울임에도 현장 감독을 자임하며 공사일지를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녀가 들인 정성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세기문엔 가죽끈이나 한지를 꼬아 끼어 질끈 동여매 쓰고 있다. 거기에 매듭단추를 맺어서 달았더니 여인의 뛰어난 솜씨가 한결 돋보인다.’ 이 기록은 ‘어머니가 지은 한옥’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한옥 관련 정보에 목말랐던 이들에게 비전(秘傳)처럼 귀한 자료가 되어 ‘심원정사’를 더욱 의미 있게 하고 있다.
퇴계와 윤용숙의 집짓기를 돌아보며 집을 짓는 마음의 소중함과 지금 우리의 집짓기를 생각한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경험을 갖지 못하고 그저 몇 개의 모델하우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익숙한 우리다. 살기 위한 집이겠으나, 팔 때에 대한 예측이 살 때의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는 세계에서는 집을 짓는 ‘마음’과 집이라는 공간에서의 ‘삶’ 자체가 존중될 여지는 없다.
그러나 요즘 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집짓기를 실천한 사례들이 있어 희망을 본다. 경기 용인시의 ‘살구나무집’(건축가 조남호)은 아파트 전문가로 불리는 두 교수가 “현재 우리의 집짓기가 빠뜨리고 있는 것”을 진단하고, 실용적이고 품격 있으면서도 보편적인 삶을 담아낼 대안으로 사회에 제시한 집이다. 또 경기 남양주시의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잔서완석루(殘暑頑石樓)’(건축가 이일호)는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구상을 건축가와 2년간 e메일로 주고받으며 다듬은 후, 자신과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에 대한 배려까지 담아 지은 집이다.
두 집의 건축주와 건축가들 모두 한옥의 공간개념이며 건축정신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것이 책 전반에 드러나 있다. ‘잔서완석루’는 ‘시멘트로 지은 한옥’이라고 주인 스스로 이르고 있으니, 이들이 정성을 다해 지은 집이, 우리의 보편적인 삶을 담아낸 조화롭고 균형 잡힌, 이 시대의 명작이 된 것은 우연일까? ‘마음으로 지은’ 더 많은 주택 명작이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