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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의 ‘고백’ 이유는?

입력 | 2016-02-03 10:36:00


최태원 SK 회장을 둘러싸고 항간에 떠돌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최 회장이 아내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불화로 오래 전부터 별거를 해왔으며 그러는 사이 내연녀와 혼외자를 얻은 것. 더욱 놀라운 것은 최 회장이 직접 언론사에 장문의 편지를 보내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갑작스러운 ‘자기고백’ 배경부터 SK그룹의 향방까지 당사자와 지인들을 통해 확인했다.


최태원 회장이 2003년부터 다닌 교회. 출소 당시 성경책을 들고 있었던 최 회장은 주일마다 이곳을 찾고 있다(위). 내연녀, 혼외자와 살았던 장소로 알려졌던 집. 현재 이곳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오후, 충격적인 제보를 받았다. ‘최태원(56) SK 회장이 2015년 8월 광복절특사로 출소한 후 줄곧 내연녀와 그녀의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 게다가 “이들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살다가 최근 다른 곳으로 이사했고, 내연녀는 1975년생인 미국 시민권자로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으며 전 남편과의 사이에도 아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최 회장에게 혼외자가 있고 부인인 노소영(55)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별거 중이라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돌았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닷새 뒤인 12월 29일, 이 같은 정황이 사실로 밝혀졌다. 놀랍게도 제보의 내용을 언론사에 장문의 편지를 통해 확인해 준 이는 최 회장 자신이었다.
“기업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 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A4용지 3장 분량의 편지에는 “소문대로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성격 차이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한 내 부족함 때문에 노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내왔다. 노력도 많이 해보았으나 그때마다 더 이상의 동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재확인될 뿐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결혼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 서로 공감하고 이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서로 함께하는 삶을 꿈꾸게 됐고 수년 전 그 사람과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를 정리하려 했으나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법적인 끝맺음’이 미뤄졌다. 이제 노 관장과의 관계를 잘 마무리하고 내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려고 한다. 어떠한 비난도 받을 각오가 돼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앙으로 이끈 목사 친구 “지금은 그대로 뒀으면…”최 회장의 ‘커밍아웃’은 같은 날 보도된 ‘박근혜 대통령, 위안부 합의’라는 빅뉴스마저 덮어버릴 만큼 큰 충격을 던졌다. 여론의 첫 반응은 “굳이 왜 저렇게까지?”였다. 재벌가의 혼외자는 도덕성이나 법적 다툼을 떠나 ‘최악의 오너 리스크’로 재벌 기업에서 언급조차 꺼리는 스캔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 회장이 출소한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이처럼 돌출행동을 감행한 배경에 이목이 쏠렸다.
취재 결과 그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무엇보다 종교적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에 따르면 최 회장은 혼외자와 내연녀의 존재를 숨길 수밖에 없었지만 신앙생활을 독실하게 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노 관장과의 관계나 그 사이 생긴 새로운 여자와 아이의 존재를 계속 숨기며 사는 건 갈수록 죄를 키우는 행위이니, 당장 매를 맞더라도 거짓 없이 살기 위해 고해성사에 가까운 편지를 쓰게 됐다는 것. 최 회장은 2013년 회사 자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후 2년 7개월 동안 성경책을 수차례 통독했다고 한다. 출소 당시에도 그의 한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출소 후 그는 주일마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N교회에 나갔다. 수행원도, 가족도 대동하지 않았다. 이곳은 그가 2003년부터 다닌 교회다. 이곳의 김모 목사와 최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1월 17일 이곳에서 만난 한 신도는 최 회장을 “수수한 옷차림으로 교회에 와서 조용히 예배를 보고 가는 겸손하고 착한 분”으로 기억했다. 그는 “가끔 신도들이 차려놓은 차와 빵을 먹으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는데 재벌그룹 총수 같지 않게 권위적인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도는 “얼마 전 그분이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신도들 앞에서 간증을 했는데 무척 감동적이었다”면서 “그분은 원래 몇 년 전부터 세례받기를 원했는데 목사님이 아직 자격이 되지 않는다며 세례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글을 써서 회심하는 절차를 거친 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노소영 관장 “꿋꿋이 가정 지킬 것”최 회장이 신도들 앞에서 간증을 한 건 지난해 12월 하순, ‘편지’를 쓰기 전이다. 간증 당시 최 회장은 개인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친구인 김 목사에게는 혼외자와 내연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마음을 터놓을 곳이 마땅치 않은 최 회장에게 김 목사의 조언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터. 이곳에서 만난 김 목사는 “최 회장이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기 전 상담을 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최 회장의 친구가 맞다”고 밝힌 그는 “최 회장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자기고백을) 한 건 아니다. 자신의 죄를 내려놓고 진솔하게 살기를 원했다”며 “지금은 그분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커밍아웃’에는 그룹 총수로서의 책임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해 출소 후 회사 경영에 몰두하며 CJ헬로비전의 인수 작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개인사를 문제 삼아 악의적인 소문이 증권가 지라시를 통해 나돌았다. SK 관계자는 “그 일로 자신도 망가지고 회사도 타격을 받는 상황이 되자 회장님이 참기 힘들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서 “그룹 총수로서 더는 개인적인 문제로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최 회장은 편지 고백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양가의 어른들을 직접 찾아뵙고 용서와 이해를 구했다. 지난해 12월 29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처가를 찾아 장모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를 만났고, 1월 1일 SK가의 차례에는 노 관장과 함께 참석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소말리아 아덴만 파병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차녀 최민정 해군 중위의 입항 환영식에 참석한 노소영 관장.


SK가에서는 최 회장의 이번 행동을 비난하기보다 조심스럽게 끌어안는 분위기다. 최 회장의 사촌형이자 SK가의 맏형인 최신원 SKC 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최태원 회장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이혼은 두 사람이 결정할 일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궁지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그룹을 끌어갈 사람이니 너무 비난만 하지 말고 포용해주면 좋겠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만의 사연과 이유가 있고, 오랜 기간 세상에 숨겨오며 고통이 심했을 것이다. 개인사를 털어놓고 그룹 경영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것”이라며 최 회장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SK그룹은 혈족 간 상속 분쟁이 없기로 유명하다. 평소 형제와 가족간 우애를 강조한 가풍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현재 형식적으로 별다른 변화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최 회장은 내연녀, 혼외자와 서울시내 모처에서 동거 중이다. 내연녀는 중국 베이징 소재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지인의 소개로 참석한 모임에서 최 회장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 내연녀와 최 회장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유치원 등을 다니면서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 학부모들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 회장은 커밍아웃의 목적이 이혼인 것처럼 비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혼 소송을 할 것 같으면 편지로 개인사를 고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 관장과의 이혼 문제는 시간을 두고 대화로 풀겠다”는 뜻을 측근을 통해 전해왔다.
최 회장이 자신의 죄에 대한 처분을 노 관장에게 맡겼으니 이들 부부의 이혼 여부는 노 관장의 결정에 달린 셈. 노 관장은 최근 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에서 “최근 노 관장님의 입장을 전달한 한 일간지의 보도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이 있느냐”는 물음에 “잘못 전달된 부분 없다. 진작 말씀 못 드려 죄송하다. 다른 재밌는 일로 이야기할 날이 오길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노 관장은 이 일간지에 “그냥 꿋꿋이 가정을 지킬 것이다. 아이들도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 관장은 김갑수 문화평론가의 휴대전화에도 “어거스틴이나 성 프란시스코 다 회심하기 전엔 엉망이었거든요.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죠. 그 한사람이 저인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가정을 지키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지호영 기자 김도균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스1 | 디자인 · 김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