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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인가 소신인가… 정치권 ‘진영 갈아타기’ 급증

입력 | 2016-02-04 03:00:00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씨(54)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놓고 세간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선 “외연 확장을 위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권 핵심에서 일하던 장수(將帥)가 이유야 어떻든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금기시(禁忌視)돼 온 ‘사람 빼가기’ ‘여야 넘나들기’가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 내밀한 자료 들고…

더민주당은 지난해 7월부터 총선을 대비한 인물 영입 작업에 들어갔다. 최우선 영입 대상은 주로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 불이익을 받은 인사들이었다. 그중에는 전현직 검사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자신이 일했던 청와대로부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의 배후로 몰려 재판에 넘겨졌던 조 씨는 영입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표 등이 지난해 8월부터 조 씨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했고, 조 씨는 결국 받아들였다.

조 씨의 더민주당 입당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강도 높게 비난하는 건 현 정부에서 그가 했던 업무 때문이다. 조 씨는 2012년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에서 네거티브 대응과 친인척 관리를 맡았다. 또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면서 청와대 직원을 포함해 현 정부 핵심 인사들과 관련된 내밀한 ‘자료’를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크다.

조 씨처럼 정권의 핵심에 있던 인사가 정권이 바뀌기도 전에 또는 정권이 바뀐 뒤 상대 진영으로 말을 갈아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의 지렛대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유독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많았다.

노무현 정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김만복 씨는 지난해 11월 새누리당에 입당원서를 냈다. 김 씨는 “저는 새누리당 정책과 많은 부분에서 정서가 맞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뒤늦게 논란이 불거지자 제명 조치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도 그를 둘러싼 ‘이중 행보’에 대한 뒷말이 무성했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치안비서관과 경찰청장을 지낸 허준영 씨도 2006년 서울 성북을 보궐선거 때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 흐릿해진 진영 구분

이들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 여야를 넘나드는 인사도 이전에 비해 많다. 정치권에도 ‘이적(移籍)의 시대’가 온 것이다.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나 2일 국민의당에 합류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두 사람은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냈다. 김 위원장이 당시 자신이 주장했던 ‘경제민주화’ 공약이 박근혜 정부에서 좌절됐다는 이유로, 이 교수도 자신이 바라는 중도개혁 정치를 위해 당을 옮겼다고 설명하고 있다.

부산의 유일한 더민주당 현역이었던 조경태 의원은 최근 새누리당으로 옮겼다. 국민의당에는 이명박(MB) 정부 인사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정용화 전 대통령연설기록비서관이 입당했고, MB 정부에서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지낸 김봉수 씨도 영입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실리를 찾아다닌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각 정당의 정책이나 이념이 중간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도 잦아진 이적의 이유로 들고 있다. 그만큼 그동안 정치권을 양분해온 보수-진보, 여와 야 간의 진영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화여대 유성진 교수(정치학)는 “여든 야든 정당의 가치와 비전이 담긴 정강·정책을 살펴보면 큰 차이를 찾을 수 없다”며 “정치인들이 과거에 비해 진영을 바꾸는 데 덜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동용 mindy@donga.com·차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