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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임희윤]중국과 문화강국

입력 | 2016-02-04 03:00:00


임희윤 문화부 기자

“…그렇게 되면 ‘진주만 폭격’ 같은 게 일어나는 겁니다. 1000만 명의 충성스러운 댓글 부대가 몇 개 주요 포털사이트에 감행하는 무차별 여론 폭격….”

며칠 전 만난 연예기획사 A 대표가 몸서리치며 한 말이다. 최근 여성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 사태로 그와 시작한 이야기의 흐름은 중국 정부와 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의 영향력으로 흘러갔다. 마지막에 ‘댓글 부대’ 얘기가 나왔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인터넷상에서 정부 방침을 지지하고 반정부 여론에 악플을 다는 ‘댓글 알바’를 1000만 명 이상 모집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A 대표는 “중국 체류 대만 가수 황안이 쯔위의 인터넷 방송 영상을 두 달이나 지난 시점에 조명한 것, 이것이 순식간에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 쯔위의 사과 동영상이 올라오자마자 중국 환추시보가 ‘쯔위는 자랑스러운 딸’이란 입장을 밝히고 이것이 현지 포털에 실시간으로 노출된 것까지…. 타임라인이 잘 짜인 한 편의 영화 같았다”고 했다. 그 뒤에 댓글 부대가 있고 1000만 명의 손을 조종한 손이 다름 아닌 중국 정부나 광전총국이 아니었겠냐는 그의 추리는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다 상상이라 해도 중국 정부의 상상을 초월하는 문화 규제의 힘은 실재한다. 최근 SBS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를 방영한 중국 TV의 현지 심의규정 준수를 위한 편집은 상상을 초월했다. 귀신이나 유령, 외계인 캐릭터 출연을 금기시하는 현지 심의규정 때문에 중국에선 외계인 도민준이 소설가로 바뀌었고, ‘모든 이야기가 실은 소설이었다’는 액자식 극 구성으로 편집됐다.

지난해만 해도 중국은 ‘짝퉁 방송’으로 조롱받았다.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 ‘별그대’와 ‘상속자들’을 섞어 만든 ‘별에서 온 상속자들’의 황당한 짜깁기가 알려지면서 국내 누리꾼의 실소를 자아냈다. 중국의 짝퉁 문화콘텐츠 생산에 공식 항의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사정은 달라졌다. 이제 중국의 규제 파워는 자본의 힘까지 곁에 두고 있다. 한국 인기 그룹 EXID가 속한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중국 기업과 매니지먼트 업무협약을 맺었다. 파트너는 중국 부동산 재벌인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의 20대 아들 왕쓰충이 설립한 연예기업 ‘프로젝트 바나나’다. 설현이 속한 AOA의 소속사인 FNC엔터테인먼트는 중국 기업에서 330억 원을 투자받았다. 씨스타가 소속된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이달 말 한중 합작 그룹 우주소녀를 데뷔시킨다.

A 대표 말대로 우마오당(五毛黨·중국 정부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댓글 부대)이 실존한다면 중국 정부가 해외 문화콘텐츠에 대한 현지 여론을 구미에 맞게 형성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로 보인다. 댓글 조작은 심의규정에 없는 임의적 규제까지 간접적으로 가능케 할 것이다. 한국과 합작한 현지 자본까지 정부를 돕는다면….

머릿속 소설의 책장을 여기서 덮을까. 글쎄, 외계인을 소설가로 바꾸는 일보다 더 쉬운 일도 많을 것 같다. 이를테면 ‘이 모든 한류(韓流)가 실은 한류(漢流)였다’는 액자를 씌우는 것.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