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 거부는 소비자 선택권 침해
서영경 서울YMCA 시민사회운동부 팀장
소액 결제에 현금만 허용하면 소비자의 불편과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가게 주인의 처지에서는 소액을 이유로 현금 손님, 카드 손님을 골라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 실효성도 당연히 의문이다. 일부 현금을 선호하는 업종에서는 카드를 들고 온 손님을 다른 업소로 내보내는 등 잘못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같은 상품에 대해 현금 가격과 카드 가격을 다르게 매기는 이중 가격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적은 금액도 현금으로 내기 어려운 서민이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분야에서 카드 결제가 거부된다면 예측하기 어려운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미 모든 상품의 가격은 카드 결제를 고려해서 매겨지므로 소액 결제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가격을 내려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 카드사들이 10달러 이하 카드 결제를 가맹점에서 거부할 수 있다는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를 들어 이를 곧바로 한국에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합리화에 불과하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매킨지에 따르면 현금 결제 비중이 50% 이하인 국가의 지하경제 규모는 평균 12%지만 현금 결제 비중이 80% 이상인 국가의 지하경제 규모는 평균 32%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지금도 탈세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소액을 이유로 현금 사용을 강제한다면 지하경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를 바라보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간편결제와 모바일 신용카드의 등장으로 점점 결제의 편리성이 높아지고 있다. 카드사의 수익 감소 때문에 소액이라고 현금만 사용하라는 것은 시대에 역행한다.
카드사의 수익 감소 해결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줄이는 방법으로 찾아야 한다. 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하고 선택권을 침해하는 건 안 된다. 이익이 발생하는 큰 금액만 카드로 받겠다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횡포로 비칠 것이다.
▼ 카드 혜택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신용카드는 일종의 돈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 현찰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편리함을 느낀다. 이에 더하여 신용카드는 당장 현찰이 없어도 미리 소비를 하도록 대출을 해주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신용카드가 현찰 대신 지급결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래할 때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과연 지급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는 비용이 요구된다. 지급능력에 대한 확인 비용은 신용카드뿐 아니라 직불카드에도 들어가는데 이 경우에는 카드 사용자의 은행계좌에 접속해 돈을 인출하기 위한 비용이 든다. 그런데 사람들의 신용도를 확인하는 정보처리 비용은 전산망 사용 등 고정 비용을 수반하기에 소액이라도 그 비용이 결제액에 비례해 줄지 않는다.
신용도에 대한 정보처리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면 카드 사용자들이 현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편리한 카드 사용을 마다할 리 없다. 그렇지만 소액결제의 경우에는 카드를 사용할 때 드는 정보처리 비용이 효용보다 커져서 사회적으로 비효율이 생겨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이 가장 활성화된 나라 중 하나다. 이웃인 일본만 해도 신용카드 사용이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가 활성화된 이유는 1990년대 말 세무당국이 사업자들의 세원을 포착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강하게 추진한 데 기인한다. 물건을 팔고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기업이나 상점들의 수입을 투명하게 포착하여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강제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보처리 비용이 많이 들지만 소비자가 얻는 편리함이 크지 않은 소액결제 때에도 신용카드 수납이 의무적으로 요구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현금영수증이 활성화되어 신용카드를 사용해야만 수입을 정확히 포착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정부가 사회에 어떠한 의무를 부과할 때는 그 의무의 수행이 만들어 내는 혜택이 그를 수행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커야만 효율성이 얻어진다. 따라서 혜택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소액결제 시 신용카드 수납 의무 정책은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오피니언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