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리에게 설날은?] “예전엔 20시간 걸려도 덕담 나눴는데 요즘 승객들 말이 없어 명절 느낌이 잘…”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 기사 이종식 씨(61)가 43년간 앉아 있는 운전석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정년이 1년가량 남은 이 씨는 이번이 마지막 설 귀성버스 운전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귀성객을 가득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행렬은 명절의 상징이다. 하지만 정작 그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에게는 명절이 없다. 이들도 고향이 있고 보고 싶은 가족이 있지만 명절 때면 오히려 안부전화 한 통 하기 힘들 정도로 더 바쁘다.
늘 자신보다 남을 위해 명절을 지내는 이들이지만 올해 이종식 씨(61)의 감회는 남다르다. 43년간 버스를 운전한 이 씨는 정년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올해가 설 귀성버스를 운전하는 마지막 해인 것이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19세부터 버스기사로 일한 그는 지금 동양고속에서 전체 기사를 총괄하는 운전반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귀성객의 옷차림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1980년대만 해도 귀성버스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가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버스 안은 오랜 시간 견디다 못해 “답답하다”며 투덜거리는 어린이들의 아우성이 가득했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선물 보따리를 싣고 타는 귀성객들도 부지기수였다. 신발, 옷 같은 선물로 버스 안 좁은 통로는 지나가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1990년대 초까지 귀성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음료수, 과자 등을 팔면서 승객들과 웃음꽃을 피우던 모습은 이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추억이 됐다. 이 씨는 “곶감과 떡을 한 상자씩 가지고 타는 승객들을 보면 버스에 ‘사람 냄새’가 퍼지는 것 같았다”며 웃었다.
이 씨가 가장 아쉬운 건 조금 각박해진 버스 안 분위기다. 옛날에는 인사말을 건네며 작은 먹을거리를 나눠 먹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버스에서는 아무 불평도 없다가 인터넷으로 ‘버스가 춥다, 덥다’라고 민원을 넣는 사람들도 있어 아쉬울 뿐이다. 그는 “우리는 ‘수고하셨어요’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힘든 걸 잊는다”라며 승객들의 작은 배려를 부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