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Billy Joel의 ‘Just the way you are’
기차 안에서 우리는 허풍을 안주로 과음을 했고, ‘정기적금’ 기타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가씨들의 반응은 매우 우호적이었죠. 하지만 ‘사고쟁이’ 광석이가 어찌어찌 하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피를 철철 흘리게 되었고, 우린 치료를 위해 새벽 세 시쯤에 어떤 캄캄한 탄광촌에서 기차를 내려야 했습니다.
거리에 아무도 없는 낯선 그곳에서 우린 기어이 보건지소를 찾아냈습니다. 우린 우리의 형제를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남자’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더 큰 시련은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마지막 스톱은 오색이었습니다. 며칠 만에 목욕을 한 우리는 행복해졌고 너그러워졌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우린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누워서 한계령을 바라봤습니다.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저스트 더 웨이 유 아’가 흘러나왔습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면 말이죠. 우린 별로 숨기는 것이 없는 아이들과 동물들을 저절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달라고 할 때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우선, 보여주지 않으면서 알아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있는 그대로를 간신히 추적해서 알게 되면 그것이 아니랍니다. 자신의 실체가 아니라, 그의 환상 속 그를 실체로 봐달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대상의 희망적 가상의 상태로 대상을 인정해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대상이 그런 희망적인 상태가 아님을 거듭해서 언행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사랑을 해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죠.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바람을 가질 수 있다면 나를 있는 그대로보다 조금 더 좋은 수준으로 인식해주고, 그렇지 못한 증거들이 확인될 때는 그것들을 무시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겠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