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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중국, 설득 아니라 압박할 나라

입력 | 2016-02-10 03:00:00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전화에도 한미 사드 배치 협의 발표
박 대통령, 중국 더 이상 못믿어
북한이 중국 말 안 듣는 게 아니라 중국이 제재할 필요 못 느껴
對中 압박, 한국만으론 힘들지만 한미일 동맹으로는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북한이 설 연휴 인공위성이라 주장하는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북한 탄도미사일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갖췄는지 의문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핵탄두를 실은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할 때까지 시간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북핵 폐기를 위한,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보수정권 8년 동안의 대중 설득 외교는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종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을 따름이다.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의 뒷문을 걸어 잠글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인지, 김정은이 중국 말도 듣지 않으니 중국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의 태도를 보면 판가름 날 것이다.

중국이 뒷문을 잠그지 않아 대북 경제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다.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을 가지려 하는 것은 북한의 내재적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나서도 북한은 아무 렇지도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북한의 내재적 논리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정은이 중국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는 것이 합의된 연기(演技)가 아닌가 의심해본다.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가 북핵 협의를 위해 방북한 날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 계획을 발표했고, 우다웨이의 만류에도 결국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태도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최소한의 외교적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 뒤에서 중국이 “봐라. 북한은 우리 말도 안 듣는다. 우리한테 책임을 미루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말을 안 들으면 말을 안 듣는다고 탓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중국은 뒷문을 잠그길 주저함으로써 자기 말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중국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날 한미 간 사드 배치 협의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틀 전 박 대통령이 한 달 전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그토록 고대하던 전화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뒤늦게 걸어왔다. 그것은 북핵이나 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기보다는 한국의 사드 배치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막아보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한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경제·외교·군사적인 모든 조치를 강구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국은 태평양 쪽으로 일본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그것도 더 강력한 미국을 배경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는 예전보다 강력해진 북한을 이용해 방어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옛 소련이 중국의 핵 보유를 허용했듯이 중국도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는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진 유엔 안보리 제재에 대한 기대는 애초 갖지 말았어야 한다.

물론 다음과 같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이 유엔 안보리 제재 논의 중에 또 다른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은 한국의 분노를 촉발해 한중 관계에 균열을 초래하고 동북아를 냉전 구도로 돌려놓아 그 속에서 핵 보유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일 동맹을 더 강화하는 순간 바로 그 의도에 말려든다.

그럼에도 중국은 설득만으로는 안 되고 압박이 필요한 나라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사실 냉정한 국제관계에서 압박 없는 설득은 설득력도 없다. 2006년 이후 거듭된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에 매달리기만 했지 중국을 압박해본 적이 없다. 사드 배치가 중국을 향한 최초의 압박이다.

중국은 넓다 해도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동북아와 동남아에서 포위되면 군사적으로 옹색한 처지에 놓인다. 한국만으로는 중국을 압박하기 힘들지만 한미일 동맹으로는 가능하다. 사드 배치에서 나아가 한미일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등으로 강도를 높여야 한다. 중국의 태도에 따라 철회될 수도 있다는 조건하에서 우리가 가진 옵션의 전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이 자극받게 해야 한다.

평화로운 북핵 폐기는 설득이든 압박이든 중국을 통한 길밖에 없다. 실패한다면 그때는 군사적으로 북핵 폐기에 나서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동북아의 평화를 깰 수 있는 군사적 북핵 폐기는 중국도 원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