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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해외 北식당 ‘김정은 돈줄’ 끊어야

입력 | 2016-02-10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중국에 관심이 많은 지인 J 씨는 몇 년 전 퇴직한 뒤 1년에 한두 차례 중국의 이곳저곳을 다녀온다. 그가 여행길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여행업체 현지 가이드가 반강제로 권하는 ‘북한식당 옵션’이다. 추가비용 부담보다도 그 돈이 가는 곳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북한식당에서 쓰는 외화는 대부분 김정은의 비자금이나 핵-미사일 개발에 흘러가지 않겠나”라고 했다.

해외에서 영업하는 북한식당 수는 약 130개로 김정은 집권 후 30개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이 100곳 안팎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러시아에도 10곳 정도 있다. 캄보디아 베트남 몽골 태국 등 한국인이 즐겨 찾는 아시아 지역의 웬만한 나라에는 모두 진출했다.


핵-미사일에 흘러가는 외화

미국 온라인매체 워싱턴프리비컨(WFB)은 2013년 북한이 운영하는 해외 음식점들은 스파이 활동의 아지트이자 북한 정권에 매년 1억 달러를 넘는 외화를 보내는 본거지라고 보도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금액과 맞먹는다. 국제사회에서 ‘깡패국가’로 전락해 정상적 교역이 끊긴 낙후된 경제력을 감안하면 만만찮은 액수다.

북한식당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나 해외주재원들이 나누는 대화 중 크든 작든 정보가치가 있는 내용은 모두 북한 정보기관에 들어간다. 실제로 기업 주재원 중에는 현지의 북한식당을 자주 찾았다가 ‘코가 꿰인’ 사람도 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정부는 해외 교민들에게 북한식당 출입 자제 권고를 내렸다. 여행업계에서도 북한식당 옵션을 줄이려는 반짝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러나 북한이 무슨 짓을 해도 감싸고도는 일부 세력이 이 조치가 잘못인 양 논란거리로 만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유야무야됐다.

극소수 종북-친북세력을 제외하면 4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 잇따른 도발을 자행한 김정은 정권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국제사회와 공조한 외교안보적 응징과 함께 독자적으로 가능한 경제제재도 총동원해야 한다.

향후 상황전개에 따라 개성공단의 전면 재검토도 불가피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북한이 운영하는 해외 식당에 발길을 끊어 김정은 비자금 돈줄의 한 축을 옥죄는 것이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한진관광 같은 여행업체들은 신속히 해외 단체관광 상품에서 북한식당 옵션을 없애기 바란다. 정부와 기업의 해외주재원들도 별 생각 없이 근무지의 북한식당을 드나들던 ‘관행’에서 벗어나는 게 바람직하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미국 작가 로버트 그린은 저서 ‘전쟁의 기술’에서 “호전적 늑대들 앞에서 평화주의자가 되는 것은 끝없는 비극의 원천”이라며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어 공격을 피하거나 달래려 하는 약한 모습은 더 큰 재앙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나라 예를 들 것도 없이 한국의 10년 좌파정권이 내부 모순으로 붕괴 위기에 처한 북한 정권에 국민 혈세와 기업 자금으로 퍼준 막대한 뒷돈이 얼마나 참담하고 위험한 결과로 돌아왔는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뼈아픈 경험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김정은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국가 정체성과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각성하고 행동할 때다. 미국 워싱턴의 6·25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에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경구(警句)가 새겨져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