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매번 이런 식으로 나와도 이웃집 왕 씨네도 건넛집 양 씨네도 속수무책이다. 문제는 이 조폭이 힘이 센 왕 씨와 양 씨에겐 덤비지 못하고 아랫집 남 씨네만 못살게 군다는 것이다. 경찰을 불러도 “현행법으론 감옥에 넣을 수 없다”고 난감해한다. 기가 산 조폭이 요즘엔 사제 폭발물과 발사 장치까지 만들며 동네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명분은 평화적 화학 실험이란다.
어쩌면 좋을까. 사람 사는 동네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지난달에 “배 째!”라는 이웃의 배를 정말 5cm 깊이로 ‘째 준’ 사람이 재판을 받았다. 찔린 당사자는 몇 주 치료받고 끝났지만 찌른 사람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찌른 사람이 훨씬 손해가 크다. 하지만 진짜로 찔러 죽였다면 그땐 죽은 사람이 더 손해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남쪽엔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너무나 가난한 북한을 먹여 살리느라 세금이 치솟고, 생각이 완전히 다른 북한 난민 수백만 명이 남하하면 한국의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 이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를 보면 이런 혼란을 미리 예방하고 감당할 능력이 안 돼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북한이 믿는 구석이 바로 이것이다. “체제 전복? 참수(斬首) 작전? 웃기지 마. 뒷감당할 자신 있어?”라며 등가죽에 달라붙은 뱃살을 한껏 내미는 것이다.
설 직전 북한의 미사일 실험으로 갑자기 한국이 큰 위협에 빠진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진짜 본질을 제대로 봐야 한다. 어차피 원자탄이나 수소탄이나 그게 그거다. 한 발만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이미 한국은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사거리에 들어있다. 여기에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추가된다고 해서 위협이 커지거나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보다 몇 배로 더 두려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북한 붕괴에 대한 공포만 넘어설 수 있다면 핵과 미사일 문제도 저절로 풀 수 있다. 북한 붕괴를 감당할 수 없다면 북한이 중성자탄을 만들든 우주 횡단 미사일을 만들든 막을 길이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 “북핵과 미사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외쳐야 북한도 코웃음치고 우리 국민들도 믿지 않는다.
핵은 북한이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올해 말 또는 내년 말까지 북한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온갖 실험을 해댈 것이다. 그러곤 미국과 한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이젠 사이좋게 지내자”며 악수를 청할 것이다. 손을 잡지 않으면 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도발할 것이다.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봐야 “먼저 치밀하게 계산하고 승산 없는 싸움은 나서지 말라”고 한 손자(孫子)의 후예답게 중국은 북한 문제에 매우 실용적으로 접근한다. 그들의 답은 아직은 김정은 체제 유지가 낫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북한에 두려움이 없다. 그러니 북핵을 놓고 이해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우리도 북한 문제에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계산해 접근해야 한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나 다른 제재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없앨 순 없다. 벌로써 김정은 체제를 고사(枯死)시킬 수도 없다.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체제 붕괴가 목적이라면 훨씬 빠른 길은 따로 있다.
나쁜 짓에 대한 대가로 “너 한번 혼나 봐라” 하는 것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그런 식의 제재는 되레 김정은의 장기 집권에 도움이 될 뿐이다. 궁핍의 책임을 미제(美帝)의 고립 압살 책동에 돌려버리고 내부 독재를 강화할 명분을 준다. 결국 북한 주민들만 피해자가 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