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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재영]위기의 ‘복덕방’

입력 | 2016-02-11 03:00:00


김재영 경제부 기자

“주택가격이 3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99만 원만 받겠습니다.”

올해 초 변호사들이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가격에 비례하는 정률 방식이 아닌 정액제로 받겠다며 부동산 법률 자문 시장에 뛰어들자 시장의 반향이 꽤 컸다. 주택 가격이 10억 원이면 공인중개사에게 지불할 때보다 수수료가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어서다. 변호사들이 ‘골목상권’까지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현재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제공하는 서비스 수준에 적합한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최근 부동산 중개업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변호사, 주택임대관리회사 등은 현재의 중개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파고들며 중개업 진출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반값 보수’가 국민들에게 환영을 받은 것도 주먹구구식 부동산 중개 관행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결과다.

직방, 다방 등 O2O(Online to Offline·온라인-오프라인 연결)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중개 방식도 바뀌고 있다. 앞으로 가상현실이 본격화되면 방문하지 않고서도 인터넷을 통해 집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고, 가상으로 인테리어를 해 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임대료가 비싼 상가 1층에 사무소를 내고 동네 물건만 거래하는 방식의 공인중개사들이 버티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내부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부동산 중개 시장이 포화 상태다. 1985년 첫 시험 이후 공인중개사는 지난해까지 35만9736명이 배출됐다. 정부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공인중개사 시험을 절대평가제로 바꾸고 손쉬운 실업구제책으로 활용하면서 자격증이 남발됐다. 운전면허와 함께 ‘국민 자격증’이라 불릴 정도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국 개업 공인중개사만 9만23명에 이른다. 동네 편의점보다 많다.

부동산 중개업의 역사는 꽤 길다. 고려 말 객주(客主)와 거간(居間)이 있었다. 18세기부턴 주택을 주로 중개하는 가쾌(家쾌)가 등장했다. 이들이 모여 자유롭게 중개영업을 하는 곳을 ‘가정에 복과 덕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복덕방(福德房)이라고 불렀다. 1893년 ‘거간인가증’이 발급돼 부동산 중개업이 제도화됐고 1984년 현재의 공인중개사 중심의 허가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영세한 동네 장사라는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중개업이 영세성을 벗고 종합 서비스 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형 중개법인을 육성하고 거래 관행을 선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TF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전문화, 산업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골목상권 다 죽인다’는 공인중개사들의 반발에 묻히기 일쑤”라며 “정치권도 총선을 앞두고 공인중개사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안팎의 도전 속에 부동산 중개 시장은 파괴적 혁신의 과정을 겪고 있다. ‘거대자본 대 골목상권’이란 단순 논리에 매몰돼 혁신을 거부하면 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업계는 ‘개업 공인중개사’라며 전문성을 강조하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복덕방’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