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루크 챈들러
미국 남부 출신인 내게 등산은 가족, 친구와 함께 만담을 나누고 숲을 거닐며 산책하는 활동이었다. 미국 남부의 등산로는 평평한 편이며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산책하기 편하다. 기온차가 심하지 않아 옷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등산로가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긴 시간을 올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배고픔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등산할 때는 평소에 신고 다니는 테니스화를 신고, 물 한 병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의 등산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산을 올라가면서 매번 놀랍고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의 등산은 미국 남부에서 하는 등산처럼 쉬운 산책로에서부터 정말 힘들고 경사가 가파른 등산로까지 다양하다. 나는 암벽등반을 하는 듯한 고난도의 등산로도 갔었다.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었다. 격렬한 신체운동으로 엔도르핀이 나오면서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번에 풀 수 있었다.
등산은 자연을 즐기며 운동하는 것을 넘어 사회 활동의 일부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가족 혹은 오래된 친구들과 산을 오르며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지나가는 등산객들도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 올라가는 사람들끼리도 쉬는 장소에 모여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 먹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설악산에 갔을 때는 등산 동호회 사람들과 같이 올라갔고, 폭포 앞에서는 야유회를 온 회사원들의 단체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나아가 등산은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한다. 소나무 향은 추석에 먹는 송편을 찔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산 속의 작은 샘물은 어렸을 때 친구들과 작은 연못에서 놀던 추억을 끌어오게 한다. 한국인도 아니고 현재 고향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등산을 하면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즐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등산하는 것에 대해 친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에게는 접근의 편리함이 가장 중요했으나 내 친구는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서울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도 도시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라는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새소리와 물소리를 듣고 소나무 향을 맡는 동시에, 정상에 올라가면 다시 도시의 일부분으로 느껴져 신기하고도 놀라운 기분이 든다고 했다.
한국 도심의 산들은 주민들에게 자연을 즐기는 쉼터를 제공한다. 자연과 도시가 하나로 어우러져 서로 조화롭게 상호 보완하는 것은 서울의 독특한 특징인 것 같다.
이제 나에게 등산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일상생활 중 일부분이 됐다. 서울 교외의 관악산 도봉산 남한산성에서부터 주말여행으로 간 설악산 한라산까지, 등산문화는 내게 큰 즐거움과 도전정신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본 등산객들처럼 나 또한 이제 등산모자를 쓰고 등산화를 신고 등산을 한다.
※루크 챈들러 씨(29)는 미국 출신으로 주한미군에서 근무한 뒤 서울대 국제대학원에 재학 중 입니다.
루크 챈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