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로빈후드 논란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은 9일 미국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서 압승 직후 승리 축하 연설 도중 이렇게 말했다. 그의 장밋빛 급진적 공약에 대해 미국 사회가 갖는 의구심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부유층에 중과세하기 위해 ‘사회에 책임지는 상속세(responsible estate tax)’를 신설한다는 플랜도 내놨다. 최상위 0.3%의 자산 규모 350만 달러(약 42억 원) 이하 상속에 대해 고세율을 매겨 연 214억 달러(약 25조8000억 원)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연금 파산 방지를 위해 필요한 연 29억 달러(약 3조5000억 원)도 여기서 나온다. 모든 미국인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 공약은 고소득자의 누진세율을 올려 충당할 계획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샌더스는 “월가 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희생 덕에 살아났다. 이제 월가가 희생할 차례”라며 월가에 대한 중과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미 애머스트대 제럴드 프리드먼 교수는 8일 CNN 인터뷰에서 “샌더스의 공약은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다. 최대 26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미 언론과 전문가들은 샌더스가 다양한 재원 마련 노력 없이 부유층에 대한 ‘징벌적 과세’에만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샌더스 공약에서는 미국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먹거리 개발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 의욕을 진작해 파이를 키우겠다는 전략보다는 가진 자를 탐욕세력으로 규정해 세금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제대로 세원(稅源) 발굴이 안 되면 18조 달러(약 2경1600조 원)의 막대한 나랏돈이 필요한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는 자본주의의 최첨단인 미국의 현실을 간과하고 고세율을 기반으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된 북유럽을 모델로 삼았다. 샌더스는 월가 은행에 부과하려는 금융거래세와 관련해 “독일 스웨덴 등이 이미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내에서도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샌더스가 분노한 민심을 부여잡고 미국판 ‘로빈 후드’가 될지 아니면 포말에 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