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존 리드는 1917년 러시아 특파원으로 혁명을 목격하고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미국 사회주의자다. 이해 미국에서도 노동자 중 5분의 1이 파업에 참가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미국에도 강한 사회주의적 흐름이 있었다. 1905년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을 창립한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유진 데브스가 그 선구자다. ‘미국 민중사’를 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나 버몬트 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등 오늘날의 미국 사회주의자들에게 데브스의 고향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를 다녀오는 것은 일종의 순례다.
▷‘자본주의는 고장났다.’ 샌더스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보다 강력한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란 말로 자신의 이념을 표현한다. 그는 2010년 공화 민주 양당이 합의한 부자 감세 법안에 항의해 상원에서 8시간 35분에 걸친 의사진행 방해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월가 점령 운동으로 표출된 민심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의 동력으로 삼았다.
▷샌더스는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압승했다. 앞서 첫 경선인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도 근소한 차로 지긴 했지만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샌더스가 정말 대세인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음 달 1일 13개 주 예비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을 지켜봐야 한다. 미국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앞서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을 보는 날이 올지 모른다.
▷공화당에서는 막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본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뉴햄프셔에서 압승했다. 샌더스는 민주당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전까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무소속으로 활동했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신대륙 정치가 구대륙의 이데올로기적 보혁(保革) 구도에 오염되지 않은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은 미국 정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두 아웃사이더 중 하나가 대통령이 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며 링 밖에서 몸을 풀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