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벌어진 한반도 위기 상황이 정치권에서는 남남(南南) 갈등으로 변질되는 모습이다. ‘북한 궤멸론’을 언급했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어제 “선거를 앞두고 현재 국면을 (통해) 안보 불안에 떨게 해서 혹시라도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 수 있다”고 정부가 ‘북풍(北風)’을 일으켰다는 듯 완곡하게 비판했다. 정치인들 눈에는 ‘선거’와 ‘정치공학’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눈을 들어 세계를 보면 북핵 문제는 동북아를 넘어 미국과 중국의 세계전략을 바꿀 수도 있는 지정학적 폭풍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11일(현지 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안보와 관련된 조치에 있어 주변국의 이해와 우려를 감안해 신중히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밝혔다. 외교적 표현이지만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재차 반대함으로써 북핵보다 자국의 전략적 이해를 우려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국방부가 어제 “사드 배치는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에 주민의 안전과 환경에 영향이 없도록 선정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옳은 대응이다. 이로써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대한민국의 안위를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생존을 위해 핵에 ‘올인’해 미국 본토까지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로켓 발사를 성공시켰지만 이로 인해 북핵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를 인용해 보도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던 시리아에서 한때 군사적 대결 상태까지 갔던 미국과 러시아가 내전 종식에 합의한 것은 북핵 문제도 국제사회의 합심으로 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이란 핵문제처럼 북핵 문제도 국제 안보를 위협하는 어젠다로 부각시킨다면 지긋지긋한 북한의 핵 위협도 마침내 끝장을 낼 수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도록 정부는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