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노 리큐가 설계한 다다미 두 장 넓이의 다실. 출처 www.columbia.edu
최후의 다회(茶會)가 열리는 날, 슬픔에 젖은 손님들이 약속 시간에 정원의 기다림 공간인 마치아이(待合)에 모였다. 마치아이와 다실을 잇는 좁은 통로 로지(露地)는 정갈하게 빗질이 되어 있었고, 양옆의 나무들은 서로 잎들을 부딪치며 몸을 떨었다. 진기한 향내와 함께 손님들이 안으로 청해졌다. 어둑한 다실 정면의 도코노마(床の間)에는 세상의 헛됨을 설파한 고승의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
주인은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차를 타 주었고, 마침내 최후의 잔을 스스로 마신 후 자신의 다구(茶具)와 걸개그림을 손님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그러나 찻잔만은 자기 앞에 남겨 두었다. 그러고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다른 사람이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그것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 단 한 명이 남았을 때, 그는 다회의 옷을 벗어 다다미 위에 단정히 접어 놓고, 순백색의 자결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이어서 피를 토하듯 시 한 수를 읊고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 채 번쩍이는 칼날을 자신의 몸에 겨누었다.(오카쿠라 덴신의 ‘차 이야기’)
정원 한구석에 풀잎으로 얼기설기 엮은 센노 리큐의 오두막 다실이 그러했다. 투박한 단순성과 텅 비어 있음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생각했던 그의 정신이 16세기 이래 일본 건축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현대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나 텅 빈 공간도 이미 와비 사비 미학의 맥락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비어 있음을 도(道)의 참모습으로 생각했던 것은 노자였다. 모든 것을 버린 가운데 인생의 부침과 운명을 그냥 쓸쓸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인 특유의 무심함은 선불교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정신을 다도라는 수단을 통해 대중 속에 깊이 스며들게 한 것은 센노 리큐의 영향이 거의 절대적이다.
불완전하고 소박하고 게다가 오래되어 낡았다는 것은 그대로 인생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얼핏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세밀하게 정성을 쏟는 일본인의 장인정신, 그리고 옷차림이나 외모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일본적 상업주의도 실은 그 뿌리에 와비 사비의 미학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설 연휴 관광객으로 가득 찬 일본을 여행하며 외국인을 매혹시키는 우리만의 미학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