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7월부터 시스템 가동
고 정종현 군(사망 당시 9세)은 2007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0년까지 3년 동안 16차례 항암치료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의료진은 17차 항암치료까지만 마치면 완치의 길이 열릴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부모는 곧 완치될 걸로 믿었다. 하지만 2010년 의료진의 항암제 투약 실수로 인한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맥주사를 해야 할 항암제 빈크리스틴을 다른 항암제(시타라빈)로 오인해 척수강 내로 주입한 것이다. 두 항암제를 연이어 맞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였다. 종현이는 투약 실수 열흘 만에 신경 손상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아직도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종현이가 세상을 떠난 뒤 2012년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항암제 투약 오류로 인한 의료분쟁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믿기지 않지만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전문가들은 현대 의료기술이 전문화되면서 자기 전공 분야를 제외한 분야의 부작용 사례를 공유하기가 어려워진 점을 꼽는다. 또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병원 외부로 적극적으로 알리고, 재사고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의사들이 의료사고 유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민호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감정위원(한양대 명예교수)은 “현대 의사는 자기 전공만 잘 아는 기능공에 가깝다”며 “예를 들어 의사들이 컴퓨터단층촬영(CT) 이전에 먹는 조영제로 인한 부작용 발생 비율의 수치는 알아도, 조영제와 함께 먹을 때 문제가 되는 당뇨병 약 등 세부적인 지식까지 얻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 기상예보처럼 의료사고 주의보 시스템 가동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의료사고 주의보’ 시스템을 7월부터 가동하기로 했다. 마치 기상예보처럼 최근에 많이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유형과 대처법을 의료기관, 의과대학, 일반 국민에 상세하게 알리겠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의 환자안전법 시행령 시행규칙을 이르면 18일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의료사고 주의보 시스템 가동을 위해 7월부터 의료사고 사례를 직접 수집한다. 환자안전법이 시행되는 7월부터 의료기관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사망, 장애, 장해 등의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보고는 병원장, 환자안전 전담인력, 의료인뿐 아니라 환자 자신과 보호자도 할 수 있다. 서면, 우편, 팩스뿐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 정부는 이 정보들을 의료분쟁 전문가들과 분석해 최근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 종류와 유형을 도출해 의료 현장에 ‘의료사고 주의보’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환자안전사고 보고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이미 연 871억 원을 투입해 매년 약 9만8000건의 사고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의료사고 예방 활동의 근거가 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사고 사례를 모아 의료사고 예방 가이드라인이나 국가 공인 교재를 발간해 의료인들이 최신 사고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하겠다”라며 “주의보 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환자안전 업무 관련 전담과 신설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 한방·치과병원도 환자안전 전담인력 뽑아야
복지부는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환자안전 전담 의료인에 대한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200병상 이상 병원뿐 아니라 요양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은 7월부터 1명 이상의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의무 채용해야 한다. 300병상 이상이면 2명이다.
그동안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각 의료기관에서 사고가 일어나도 ‘쉬쉬’ 하는 분위기 속에 분쟁을 막기에 급급했다. 이렇다 보니 의료사고 피해자가 구제받기도 쉽지 않았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사고 분쟁 및 조정 신청을 해도 의료인이 거부하면 조정이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민사소송이 마지막 끈이지만 정보 부족 속에서 자신이 모든 걸 입증해야 하는 소송에서 피해자가 이길 가능성은 낮은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