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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기자의 談담]“프랑스, 스타트업 통해 ICT강국으로… 한국과 핀테크-로봇 교류”

입력 | 2016-02-15 03:00:00

2016년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파비앵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




5일 서울 주한 프랑스대사관저에서 만난 파비앵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는 “올해 3∼12월 ‘한국 내 프랑스의 해’를 통해 문화뿐만 아니라 경제, 대학, 관광, 미식, 스포츠, 지방 간 교류에 힘 쏟겠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선미 기자

5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저 응접실에 들어서자 그랜드피아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벽면엔 대형 그림 두 점이 걸려 있었다. 대사관 측에 물어보니 불사조(不死鳥)를 그린 오른쪽 직물화는 살바도르 달리, 왼쪽 추상화는 프랑스에서 활동한 한국인 1세대 화가인 이세득(1921∼2001)의 작품이다. 프랑스 가구와 한국의 추상화가 잘 어울렸다. 파비앵 페논 대사에게 “피아노를 친다면 연주를 부탁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친다”며 손사래 쳤다. “아이가 몇 명인가요?” “14, 12, 9, 2세. 네 명이에요. 아들 하나, 딸 셋.(웃음)”

파비앵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48)가 한국에 부임한 지 다섯 달 됐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전날인 4일에는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페논 대사는 지난해 9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며칠 후 바로 파리로 가서 샤요 국립극장에서 열린 ‘2015∼2016 한-프랑스 상호교류의 해’ 개막행사(현지 시간 9월 18일)에 참석했다. 양국 간 수교 130주년인 올해는 ‘한-프랑스 상호 교류의 해’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는 ‘프랑스 내 한국의 해’,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는 ‘한국 내 프랑스의 해’로 양국에서 각각 150여 개의 사업이 펼쳐진다. 그 중대한 책임이 페논 대사의 어깨 위에 있다.


양국에서 韓-佛 유학박람회

―지난해 저도 ‘한-프랑스 상호교류의 해’ 개막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파랑 하양 빨강으로 빛나던 에펠탑이 인상적이었어요. 곧 한국의 태극기이자, 프랑스의 삼색기더군요.


“‘프랑스 내 한국의 해’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케이팝, 웹툰, 드라마, 영화, 패션이 워낙 인기라 한국에 와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를 만나 내년부터 한국어를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 제2외국어로 격상시키기로 했습니다. 양국 간 교류가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국 유학생 수는 얼마나 되나요.

“현재 한국에서 공부하는 프랑스 학생이 1000여 명,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이 6500여 명입니다. 2013년 준비에브 피오라조 고등교육장관의 이름을 딴 ‘피오라조 법’이 시행되면서 프랑스 대학들이 영어 수업을 대폭 늘리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학생이 많은 프랑스는 지난 2년간 외국인 유학생이 21% 늘었습니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한국 유학박람회가, 한국에서는 프랑스 유학박람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자국어에 대한 애정이 큰 프랑스에서 영어를 장려하다니 의외입니다.

“언어가 장벽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영어 수업을 보고 프랑스에 왔다가 프랑스어를 배우는 외국 학생이 많습니다. 학생 유치에 힘쓰는 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프랑스는 체류 허가를 얻는 게 까다로운 것으로 악명이 높지 않던가요.

“프랑스가 달라졌습니다. 장기 체류하는 유학생을 위해 1년마다 갱신해야 했던 체류증을 학업 기간 중 한 번만 발급받으면 지낼 수 있도록 최근 법이 바뀌었습니다.”


신세대 스타트업 육성에 승부

―청년실업이 고민입니다. 프랑스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프랑스는 지금 정부, 기업, 학교가 협력해 스타트업 인재를 키우는 데 모든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우수한 인재를 키워 신바람 나는 일자리를 갖게 하면 저출산과 실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대표적인 것이 스타트업을 세워 해외 진출을 목표로 삼는 신세대 기업가들의 네트워크인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입니다. 정부 산하 공공투자은행인 BPI프랑스가 참여해 해외 스타트업 인재 유치를 지원하는 ‘프렌치 테크 티켓’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당선된 창업가에게는 연간 2만5000유로(약 3400만 원)의 보조금을 주고 사무공간과 컨설팅 등을 지원합니다.”

―프랑스어와 영어의 조합으로 ‘라 프렌치 테크’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가 있습니까.

“프랑스가 디지털 강국 지도에서 굳건히 자리 잡기 위해 국제적 가시성을 갖추는 게 목표였습니다.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으니 꽤 괜찮은 이름 같습니다.”

페논 대사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쇼인 국제가전전시회(CES) 얘기도 했다. 프랑스는 이 쇼에 190개 업체가 참가해 미국(193개 업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기업이 참여한 국가였다. 세 번째인 이스라엘의 참가 업체 수는 17개였다. 특히 스타트업 전시장인 ‘유레카 파크’는 프랑스 상징인 수탉 그림으로 뒤덮였다.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수탉이 그려 있는 ‘라 프렌치 테크’ 로고를 각 부스에 달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최근 스타트업이 활기를 띠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최근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18∼24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절반이 직접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프랑스는 창조와 혁신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교육이 인재들의 재능을 발굴해 키웁니다. 연구개발(R&D) 관련 감세(減稅)와 크라우드 펀딩 등 스타트업을 위한 정책이 40여 개에 이릅니다. 프랑스는 유럽 2위의 벤처캐피털 시장이기도 합니다. 올해 말엔 프랑스 ‘일리아드’ 통신사의 그자비에 니엘 대표가 파리 도심에 세계 최대 규모(3만4000m²)의 창업 인큐베이팅 센터를 열어 1000개의 스타트업을 입주시킬 계획입니다. 한국의 스타트업도 환영합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스타트업을 소개해 주시죠.

“크리테오(빅데이터 기반 광고회사), 시그폭스(대표적 사물인터넷 기업), 방트프리베(명품 인터넷 쇼핑몰), 블라블라카(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등이 유명합니다. 프랑스는 빅데이터, 핀테크, 사물인터넷, 비디오게임 분야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스타트업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기술력과 미적 감각을 조화시키는 창조적 노하우. 곧 창조경제입니다.”

―대사님이 관심을 갖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있습니까.

“그동안 만났던 스타트업 중에는 ‘마이뮤직테이스트’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콘서트를 열어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곳입니다.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개인 맞춤형 수학교육 스타트업 ‘노리(KnowRe)’도 관심을 끕니다.

―한국에서 펼쳐질 스타트업 교류는 무엇입니까.

“3월 말 서울에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프렌치 테크 허브’가 문을 엽니다. 의료기술과 핀테크 포럼(5월), 로봇박람회(10월) 등도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 내 프랑스의 해’ 개막행사는 무엇인가요.

“조세 몽탈보 파리 샤요 국립극장 무용감독과 한국 국립무용단의 공동제작 공연이 3월 23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립니다. 이에 앞서 3월 21일에는 아따블르(서울 종로구 삼청동), 메르씨엘(부산 해운대구 중동) 등 한국 내 프랑스 식당 11곳에서 ‘구 드 프랑스(Go^ut de France·프랑스의 맛)’가 열립니다. 세계적 요리사 알랭 뒤카스 등이 전 세계 프랑스 식당 1000여 곳을 선정해 현지 재료로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입니다.”

대사관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3분의 1이 ‘프랑스를 방문하게 된 이유’로 미식과 와인을 꼽는다. 이에 프랑스 외교국제개발부는 ‘와이너리 관광’을 세계적으로 키우기 위해 이달 초 와인 관광 사이트(visitfrenchwine.com)도 새롭게 선보였다.


파리 테러 때 한국인 위로에 감사

―몇 년 전 프랑스 와이너리들을 취재하면서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과의 문화 교류 가능성을 봤습니다. 프랑스 와인 저장고에서 한국의 공연을 펼치는 식으로요.


“맞습니다. 양국 간 지역별 공통분모를 찾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양식기로 유명한 프랑스 중서부 리모주는 한국의 도예도시 경기 이천과 기술 교류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부산, 강원 평창, 경남 거제를 방문했는데, 다른 지역도 부지런히 다녀 이 협력을 늘리겠습니다.”

인터뷰에 배석한 미리암 생피에르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보관은 “혹시 읽어봤느냐”면서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발효음식을 먹는다면’ 기사(1월 26일자)를 소개해 주었다. 미슐랭 가이드 별 세 개를 받은 프랑스 스타 요리사 야니크 알레노가 반해있을 만큼 한국의 김치가 프랑스에서 세련된 건강음식으로 통한다는 내용이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습니까.

“불고기와 비빔밥이요.”

―한국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프랑스 음식이 있나요.

“프랑스어로 ‘삶의 예술(art de vivre)’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3500여 종의 치즈와 다양한 와인을 맛보면서 그 예술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프렌치 스타일’을 정의한다면….

“역사와 전통, 끊임없는 혁신의 조합.”

―지난 5개월의 한국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한국 국민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을 때, 두 살짜리 막내딸이 한국 어린이집을 즐겁게 다니며 한국어를 조금씩 말하는 걸 볼 때, 부산의 해변과 철원의 독수리 등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감상할 때….”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