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송진우의 후예인 류현진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14년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의 류현진은 신시내티전에서 7회까지 21타자를 범타 처리했다. 하지만 퍼펙트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흘러나온 8회 연속 안타를 맞고 3실점했다. 긴장 속 TV 앞을 지켰던 국내 팬들은 긴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철지난 야구 이야기가 생각난 건 바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지카 바이러스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완벽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우리 사회에 과도하게 퍼져 있는 것 같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위기 발생 시 국민 소통 방법)에 실패했던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돌이켜 보자.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부의 확신에 찬 어조는 ‘신종 감염병은 절대 국내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惡)’이라는 인식을 키웠고 이후 더 큰 혼란과 불신으로 돌아왔다. 세계 어느 나라건 하루면 닿는 글로벌 시대에서 감염병은 지진처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자연적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메르스와 달리 지카 바이러스는 호흡기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성인 감염자의 80%는 별 증상이 없고, 2주가량의 휴식만으로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소두증 우려가 높은 임신부의 지카 바이러스 발생 국가 방문을 자제시키고, 여행 이후라도 헌혈, 성관계, 임신 등 몇 가지만 유의하면 과도하게 공포를 가질 이유는 없다.
국내 무대 시절 류현진은 ‘퍼펙트게임을 절대 달성할 수 없는 투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류현진은 주자를 단 한 명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강박적인 피칭보다는, 주자가 나가도 흔들리지 않는 배짱과 뛰어난 완급 조절 및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면서 최고 수준의 투수로 성장했다.
감염병에 대처하는 자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사회를 무균실로 만들겠다는 강박은 역으로 혼란을 키울 수 있다. 균이 침투해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과 냉정한 대응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과도한 공포 때문에 혼란을 겪는 일은 메르스 단 한 번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