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가드너가 말하는 교육방법의 차이란 문화적 배경의 차이다. 다른 의미로 보면 사물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연역적 방법으로 풀어가느냐, 귀납적 방법으로 가느냐의 차이다. 결과는 같다. 예컨대 수학에서 공식을 먼저 알고 문제를 풀어가는 연역적 방법이나 과정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귀납적 방법은 문화적 배경의 차이일 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입시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미국적인 입시, 한국은 한국적인 입시제도의 특징을 갖는다. 아일랜드의 경우 같은 유럽권이지만 다수의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100년 이상 오직 점수로만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적어도 입시에서만큼은 성적점수가 가장 객관적이라는 아일랜드 국민들의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나 학생이 입시에 유리하도록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비교과 활동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다. 이뿐인가. 학생부에 기재된 내용의 진위 판단은 정확한가. 허위로 기재된 내용은 사정관들이 면접에서 거른다고 하지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 면접에서 거를 수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허위 스펙 사례는 왜 거르지 못했는가. 수시는 진짜 실력이 아닌 복불복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정에 맞도록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역사 문화적 배경에 바탕을 둔 안정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서구식의 과정 중심적인 것만이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창의란 충분한 지식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성적이야말로 창의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가 된다. 지식기반 없이 창의가 저절로 꽃필 수 있는가. 입시마저 우연성에 기대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수시를 ‘로또’에 빗대어 부르는 이유를 심각하게 되짚어볼 일이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