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네 ‘인상, 해돋이’(1872년)
동트는 항구를 그리기 위해 화가는 우선 밑칠을 했습니다. 따스한 회색으로 캔버스 표면을 덮었지요. 그 다음 붉은색, 푸른색으로 일출과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세상을 표현했습니다. 매우 빠르게 화면을 채워 나갔던 모양입니다. 바탕칠이 내비칩니다. 크레인, 건물의 윤곽도 모호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풍경화였지요. 변함없는 풍광을 꼼꼼히 그릴 의도는 없었거든요. 해가 솟구치는 순간의 인상을 화폭에 잡아둘 생각이었지요. 태양이 어둠을 밀어내는 찰나의 세상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바로 그런 순간의 변화를 미술로 붙잡고 싶었어요. 그러니 붓질이 거칠고, 대담해질 수밖에요.
새로움은 늘 논란거리입니다. 외부 세계를 변화의 연속으로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한 그림은 미완성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재능 없는 화가의 서툰 객기쯤으로 여겨졌습니다. 해돋이인지, 해넘이인지조차 불분명하다고 꼬투리를 잡혔지요.
“정말 황홀해!” 멋진 일출을 본 모네가 짧은 감탄사를 남기고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면 미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인상주의 미술도 새로운 이름을 가졌겠지요. “퍽 인상적이군!” 혁신적 표현에 쏟아진 조롱을 인상주의는 예술의 정체성으로 수용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과의 만남 그 자체만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한 성장과 실천이 소중합니다. 올 한 해는 어디서 해돋이를 구경할지보다 어떻게 해맞이를 겪을지를 궁리해 볼 참입니다. 일출의 명소 대신 일상의 일출에서 도전적인 전환점, 의미 있는 반환점을 모색할까 합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