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속 설현은 지구인의 욕망이 투영된 ‘외계인’
“미친 거 아냐? ‘그레이의 몇 가지’인가 뭐 그 콘셉트인데…. 데이터 걱정 말라며 왜 그녀를 밧줄로 묶어야 하지? 남자들의 그릇된 성적 판타지를 채워주기 위한 거잖아.”
XY염색체(남성)는 반박한다. “이게 본디지(bondage·결박 페티시)라고?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한 광고잖아. 소인이 돼 구석구석 탐험하고 싶긴 하네….”
○ 썰(舌)현
우리는 조사에 돌입했다. 조사업체 엠브레인과 함께 5∼10일 남성 305명과 여성 313명 등 총 618명에게 설현의 전신 포스터를 보여주고 느낌을 물었다. 남성의 절반은 “사랑스러워 떼어가고 싶다”(52.8%)고 답했다. 여성 절반은 “선정적인 성 상품화로 불쾌하다”(44.1%)고 했다.
24세 여성 이모 씨는 ‘밧줄 설현’ 포스터에 몸서리쳤다. “무서워요. 범죄자들이 성폭행할 때 여자들을 묶잖아요.” 32세 직장인 서모 씨는 음흉했다. “묶여 있는데, 만져도 될까요?”광고를 제작한 이동통신사 기획자를 만났다. “보디 마케팅은 아니에요. 설현 씨의 몸 때문에 광고가 성공했다고 보지 않아요.”(SK텔레콤 관계자) ‘밧줄 설현’ 포스터를 보여주자 관계자는 “데이터 걱정을 꽁꽁 묶으란 의도”라고 했다.
○ 포스터 설현의 실체
“연습생 시절부터 몸매가 눈에 띄었습니다. 심지어 운동을 잘 안 해도 몸매가 좋아요. 먹을 땐 엄청 많이 먹죠. 닥치는 대로. 타고난 겁니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했다. “촬영 시 소속사에서 멤버별로 약점을 보정해달라는 얘기를 하는 건 관례예요. AOA 7명 각자 보완사항이 있었죠.”(AOA 전원을 촬영한 포토그래퍼 A 씨) “영화제에서 실물을 봤죠. 성형학회에서 얘기할 정도로 이례적으로 뛰어난 부분이 있기보다는 사람들이 두루 좋아할 만한 외모입니다.”(박덕준 JYP성형외과 원장)
설현 신드롬은 1999년 당시 프린터 광고 속 테크노 춤으로 촉발된 전지현 열풍에도 비견된다. 전지현: 최신형 프린터=설현: 스마트폰. 멋진 몸매와 뉴테크놀로지는 왜 하나로 묶일까? 왜 대중은 연예인의 몸에 집착하나? 우린 좀더 철학적인 분석을 원했다.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원장이 답했다.
“인간은 인격을 벗어던지고 본능적으로 성관계를 하려는 ‘즉자적(卽自的) 몸’의 욕망을 가진 존재예요. 법 윤리 종교로 억제할 뿐. 근데 자본이 이런 제약을 뛰어넘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즉자적 성에 대한 욕망이 분출돼 나왔어요. ‘기술 마약’도 생겨났죠.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테크놀로지. 몸매 집착은 기술 집착과 같은 맥락입니다. 욕망의 실현이란 차원에서요.”
설현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직접 만나서. 그녀는 촬영을 하기 위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통가로 출국한 상황. ‘카톡’으로 질문을 전달했다. 16일 오전, 설현이 직접 쓴 카톡 답변이 도착했다.
“제 몸매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이에요. 다이어트로 고생했던 저이기에 앞으로도 자기관리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잡게 됩니다.”
‘노오오오력’한 결과라는 겸손함까지 보인 설현에게, 우리는 감동받았다. 근데 설현의 카톡을 본 주변 여성 몇몇은 이렇게 외쳤다. “가식덩어리!”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임무를 중단하고 홍익대 앞 술집으로 향했다.(다음 회에서 계속)
김윤종 zozo@donga.com·임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