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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짧은 소설]“댁의 며느리는 어떠십니까?”

입력 | 2016-02-17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아아, 이거 꼭 마이크에 대고 얘기해야 하는 겁니까? 아이고, 평상시 형님 동상, 하면서 허물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돌아가면서 마이크에 대고 한마디씩 하니까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네요.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나 속풀이도 하고, 며느리들 흉도 보고 하니까, 정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사는 게 사는 거 같아 맘이 따뜻합니다.

좀 전에 우리 성수동 형님도 한 말씀 하셨지만, 실은 저도 이번 설 명절에 며느리와 사달이 한 번 났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며느리를 본 지 벌써 15년쯤 되었네요. 아시는 분들 다 아시겠지만, 우리 며느리가 학교 선생님입니다. 중학교 수학 선생. 똑 부러지고 야물딱지지요. 좀 무뚝뚝하고 잔정은 없어도, 나는 뭐 그만하면 됐다, 생각했습니다. 우리 형님들과 동상들이, 며느리가 매일같이 전화도 해주고 주말마다 찾아온다고 자랑도 많이 하지만, 나는 그런 거 하나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끼리 잘 지내고, 저희끼리 알콩달콩 살면 더 바랄 거 없다, 그렇게 생각해왔으니까요. 그래서 명절 때도 며느리 고생 안 시키려고, 차례 음식도 미리 다 해놓고 장도 미리 다 봐 놓고, 해마다 그랬습니다. 철마다 고춧가루니, 김치니, 젓갈이니, 빠뜨리지 않고 보냈고요, 명절 때도 차례 지내고 나면 꼬박꼬박 제가 먼저 친정에 가라고 등 떠밀고 그랬습니다.

한데요…. 이번 명절엔 제가 부아가 나서 한소리를 했습니다. 뭐, 저는 그거에 대해선 지금도 후회가 없어요. 시어머니로서 할 소리를 했으니까요. 이번 명절에는 작년에 혼사를 치른 우리 막내딸이 사위와 함께 찾아온다는 얘기를, 제가 며느리한테 해놓았습니다. 우리 아들과 딸이, 남매간 정이 유별났거든요. 이제 자주 못 보니까, 올해만이라도 시누이 얼굴 보고, 그래도 하룻밤이라도 같이 보내고 친정에 가려무나, 그렇게 오자마자 얘기를 해놓았지요.

아, 근데, 우리 며느리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들이 작은 방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는데, 며느리가 발길로 툭툭 그 등짝을 치면서, 당신이 어서 얘기하라고, 처가에도 오랜만에 오는 형제들 다 있다고, 시누이는 작년 결혼하고 나서도 봤지 않냐고, 그렇게 채근을 하더라구요. 그 모습을 제가 딱 보고 말았죠…. 아, 그랬더니 속에서 열불 천불이 나더라구요. 내가 이날 입때까지 며느리 힘들게 한 게 뭐 있었던가, 눈치를 봤으면 내가 눈치를 봤지, 뭐 불편하게 한 적 있었던가, 자기가 학교 선생이면 선생이지, 서방한테까지도 어디 선생질인가…. 뭐, 그런 생각들까지 다 드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며느리 앉혀 놓고 속 시원히 할 말 다했지요. 네 남편이 지금 직장을 잃어서 잠시 저러고 있다고, 네가 지금 시어미도 무시하는 거냐고, 매해 친정 안 간 적 있느냐고…. 그랬더니, 우리 며느리가…. 세상에,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따박따박 말대답을 합디다. 자기가 가장처럼 몇 년을 집안 살림 혼자 책임졌다, 남편이라고 매일 집에서 게임만 한다, 명절에도 도와주는 거 하나 없다, 그래도 제가 언제 시부모님 용돈 한 번 거른 적 있냐, 이번 명절에 자기 친정에는 미국으로 시집간 언니가 온다, 운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제가 기가 턱턱 막히더라구요. 아들이 저렇게 놀고 있으니까 며느리한테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제가 소리쳤습니다. 오냐, 그렇게 네가 잘났으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아, 그랬더니 이 며느리가 정말 명절 차례만 지내고 남편 앞세워서 친정으로 가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오늘 이때까지 이렇다 저렇다 연락 한 번 없고….

형님 동상들은 제가 지금 무엇 때문에 며느리한테 화가 났는지, 왜 그때 그렇게 열불 천불이 났는지, 다들 잘 아시죠? 네, 맞습니다. 다른 거 없어요. 금쪽같은 내 아들 등짝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린 거. 그게 제일이지요. 며느리도 나중에 아들 키워서 장가보내 보면, 그때 되면 다 알게 될까요? 제 영감 등짝을 다른 여자가 툭툭, 발끝으로 건드리는 느낌, 그거랑 똑같다는 거…. 며느리가 알까요? 나는 며느리가 먼저 전화를 걸어올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릴 작정입니다. 자기가 깨달아야지, 누가 뭘 가르칩니까? 안 그렇습니까, 형님 동상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