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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지나간 뒤, 서정희 첫 인터뷰

입력 | 2016-02-17 10:23:00


서정희가 빨간색 립스틱을 꺼내들었다.
“처량하게 나오는 건 싫으니까요.”
카메라 앞에 선 그녀가 활짝 웃었다. 마치 열아홉 살의 그날처럼.



서정희(56)를 만난 건 겨울바람이 유난히 매서운 아침이었다. 그녀로선 오랜만의 외출이다. 지난해 32년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근황을 알린 직후였다. 올해로 쉰여섯인 그녀는 여든이 가까운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힘든 시기를 홀로 견뎌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녀린 몸이었다.

그날 아침 그녀를 만난 곳은 여의도였다. 생방송 출연을 위해 방송국에 간다고 했다. 그녀가 엄마 장복순(79) 씨와 함께 KBS 의 촬영을 마칠 무렵, 이미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그녀의 이름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방송 후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난 그녀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격려의 메시지가 밀려와 한시도 휴대전화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방송 출연 전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던 그녀가 “오랜만에 잡지 인터뷰인데 ‘제대로’ 해보고 싶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와 함께 청담동의 한 카페로 향했다. 청담동은 그녀가 이혼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차창 밖으로 그녀가 결혼생활을 끝낸 청담동의 주상복합아파트와 얼마 전까지 그녀의 소유였던 건물이 보인다. 유리창에 비친 그녀의 표정이 쓸쓸하다.

“후회되는 게 많아요. 당시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많이 서툴렀죠. 이혼에 대해서 ‘누구 잘못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에 어떤 것도 완벽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서로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에게 지난 세월은 참 고단했다. 재작년 전남편 서세원(60)을 폭행 혐의로 신고했고 여러 차례의 소송 끝에 마침내 지난해 8월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워낙 소문난 잉꼬부부였기에 이들의 소식은 충격이었다. 종종 방송에 비치는 서정희의 모습은 ‘내조의 여왕’ ‘살림꾼’ 그 자체였다. 라이프스타일 관련 책도 다섯 권이나 냈다. ‘결혼생활은 서정희처럼’ 이 대세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땐 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즐겼던 것 같아요. ‘와, 서정희가 이렇게 멋진 데서 잘 사는구나’ 하는 말들을 은근히 좋아했죠. 속은 썩어 들어가는데 겉으로만 행복한 척했던 거예요. 그땐 그게 제 자신을 더 외롭게 한다는 걸 몰랐던 거죠.”

열아홉의 나이에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모델로 데뷔했다. 손거울만한 얼굴에 인형 같은 이목구비로 광고계에서는 촉망받는 신인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모델로서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서세원과 만나 그의 아이를 낳았다. 그땐 그게 사랑이라 믿었고, 복이라 여겼다.



내가 이혼하지 못했던 이유세상 사람들은 화끈한 서세원과 차분한 서정희가 참 잘 맞는 한 쌍이라 말했다. 가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임신 8개월에도 광고 촬영을 했다. 남편과의 불화가 있을 때마다 ‘모든 결혼생활이 다 그런 것 아니겠나’ 하며 참고 살았다. 언젠가는 남편이 변할 거라 기대도 했다. 당장은 그저 묵묵히, 집에서 내조를 잘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죠.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결혼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까 책임도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놈의 완벽주의가 발목을 잡았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으로서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살림에 매진했다. 요리를 취미 삼았고, 인테리어를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유난스런 엄마였다. 그 사이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고 가슴에 종양 제거 수술도 받았다. 32년의 결혼 생활 동안 ‘여자 서정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집착이었다.

“딸 동주(33)와 아들 종우(31)에겐 참 미안한 부분이에요. 제 열등감을 아이들을 통해 해소하려고 했던 거요.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그땐 저도 어렸으니까. 엄마가 된 게 처음이었으니까. 스무 살에 엄마가 됐는데 그때 제가 뭘 알았겠어요? 엄마라고는 했지만 결국엔 아이들과 함께 배우면서 자란 거죠. 지금 다시 엄마가 될 수 있다면 이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잠깐 눈시울을 붉혔던 서정희가 “다시 엄마가 되긴 늦었고, 차라리 할머니가 되어서 손주를 보는 게 빠를 것 같다”며 웃었다.

“아이들을 시집장가 보낼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남편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이 떠나간다는 게 두려웠거든요. 그 공간 속에 나만 혼자 남는다는 것. 그 고통은 말로 다 표현 못해요. 자식 결혼식 날, 보통 양가 부모들도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는데 저는 그걸 거부했어요. 예복도 따로 입지 않았고요.”

아이들은 서정희가 사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혼이라는 벽 앞에서 수십 번씩 멈춰 섰던 이유도 바로 아이들이었다. ‘내가 이혼하면 혹시라도 아이들이 손가락질 받진 않을까’,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하진 않을까’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현재 그녀의 딸과 아들은 결혼 후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얼마 전 그녀의 근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방송에는 딸 동주 씨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연말을 혼자 지낼 엄마 걱정에 잠깐 한국에 귀국한 것이다. 침대 위에 나란히 누운 모녀의 모습은 꼭 친구 같았다.

“근 1년 반을 통틀어 가장 많이 웃었어요. 동주가 저를 노래방에 데려갔는데 저는 요즘 노래방이 그렇게 모던한 스타일인 줄 처음 알았죠. 어떨 땐 딸이 더 엄마 같아요. 요즘도 밤마다 매일 전화가 와요. 제 걱정 때문에요.”

딸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이번엔 서정희의 엄마 장복순 씨가 미국에서 귀국했다. 지난해 10월까지 함께 지내다 두 달 반 만에 이루어진 모녀 상봉이다. 엄마 장씨는 못 보던 새 딸이 더 마른 것 같다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이 좋아하는 ‘묵은지 멸치지짐’부터 뚝딱 만들어줬다고 했다. 쉰이 넘은 서정희도 엄마에겐 늘 열아홉 살 소녀다. 그녀는 이혼 후 가족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낀다.



세상 밖에서 홀로서기 이제는 집안일을 꾸역꾸역 할 필요가 없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면 그만이다. 굳이 집안에 갇혀 지낼 이유도 없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가 그녀 앞에 다가온 것이다.

“세월이 참 무서워요. 어떤 구속도 없이 혼자 살면 되게 자유로울 것 같잖아요? 그런데 저는 막막했어요. 집안에만 있던 세월이 너무 길어서 밖에선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은 물론 먼 길은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요, 나간다고 해도 만날 친구들도 없는 거죠. 문 앞에 주저앉아 하루 종일 울다가 창밖을 내다보면서 몇 번씩 자살을 생각했어요.”

그녀는 2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남편에게 폭행당한 그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상담 및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다. “나가서 친구를 사귀라”는 의사의 계속된 권유로 이혼 후 1년 만에 어렵게 용기를 내 집밖으로 나왔다. 동네에 있는 대중목욕탕도 가봤고, 집근처 탁구장에서 운동도 했다. 그러자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동네 카페에 갔는데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느껴지는 거예요. 정작 누구 하나 ‘서정희 씨 아니세요?’ 하고 제게 말을 붙이지는 않으면서 말이죠. ‘왜 사람들은 내게 다가오지 않을까’를 두고 굉장히 고민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먼저 그 사람들을 보고 씨익 웃어줬어요. 그랬더니 ‘서정희 씨, 힘내세요!’ ‘응원할 게요’ 하면서 이런저런 덕담을 해주시더라고요. 요즘은 동네 목욕탕에 가도 참 재밌어요. ‘왜 이렇게 말랐냐’ ‘밥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면서 식혜나 귤 같은 간식거리를 심지어 탕 안에서 건네주신다니까요(웃음).”

하루하루 세상을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섭외 전화가 왔다.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서정희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덜컥 약속을 하고는 이런저런 생각에 전날 밤잠을 설쳤다.

“촬영 당일 아침에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집안 꼴도 엉망이고 씻지도 못한 상태였죠.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벌써 집 앞에 와 있다면서 그런 모습도 괜찮으니 문만 열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잠옷 바람으로 문을 열었어요.”

지금껏 흐트러진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그녀였다. 그녀로선 엄청난 변화였다. 그렇게 현관문을 열면서 그녀는 마음의 문도 활짝 열었다.

“한번 현관을 열고 나니 그 다음부턴 그게 엄청 편하더라고요. 방송 분량은 40분 정도였지만, 촬영은 2주에 걸쳐 진행됐어요. 꼬박 2주를 잠자는 시간 빼고 제작진과 붙어 있었던 거죠. 분명 그 다큐멘터리 촬영은 제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꾸밈없는 서정희의 모습에 대중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강박이나 강요가 아닌,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진짜 ‘자유’였다.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다. 방송 이후, 여기저기서 섭외 전화가 빗발친다. 모든 걸 ‘내려놓은’ 서정희는 더 이상 감출 것도 두려운 것도 없다고 했다.

힘든 시기를 거쳐 이제 막 날개를 펴려는 그녀에게 신앙은 여전히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난 연말엔 교회 초등부 아이들과 함께 성탄감사예배를 준비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녀가 현재 교류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교회에서 맺어진 인연들이다. 한때는 너무 힘들다며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산다는 그녀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여든이 넘고 세상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을 때, 그때쯤이면 그 사람도 결국 나를 찾지 않을까? 인생이 이렇게나 외롭다는 걸 그 날엔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제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이젠 미움을 버리고 응원하고 싶어요. 그래도 아이들의 아빠니까. 우리 아이들이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갖고 살아가길 바라요.”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여자가 누구인가’(아가서 6장)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그녀가 기사에 이 성경 구절을 꼭 넣어달라며 몇 번이고 부탁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서정희’가 되길 바란다면서.



글 · 정희순 | 사진 · 지호영 기자 | 디자인 · 김영화 | 장소협조· 라쏨(02-517-0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