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웹툰과 영화로 잘 알려진 작품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남파 공작원 3인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깨알재미를 준다. 뒤늦게 남파된 공작원 리해진이 최고의 요원 원류환에게 총을 겨누는 극적인 장면. 사진제공|주다컬처
■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잘 짜여진 구성으로 원작 부담감 극복
이규형·김영철, 코믹연기도 찰떡호흡
김수용, 첫 악역 도전…격투신도 눈길
눈이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밤에 ‘은밀하게’ 대학로에 가서 ‘위대하게’ 보고 나왔다. 웹툰으로 처음 인기를 얻었고 김수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7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엔 뮤지컬로 나타났다. 제목도 그대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2만대1의 경쟁률을 뚫고 5446부대 최고의 엘리트 조장의 자리에 오른 원류환(이규형·유일 분)은 달동네 구멍가게 바보, 공화국 최고위층 간부의 아들인 리해랑(박준후·김영철 분)은 오디션에 합격해 아이돌 가수라 되라는 황당한 지령을 받는다. 어린 시절 원류환이 우상이었던 리해진(형곤·고은성·박준휘 분)은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 원류환, 리해랑 곁을 지킨다(원래 임무는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작품은 원작을 얼마나 흥미롭게 무대화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한계가 있는 무대 위에 영화를 고스란히 옮겨 놓을 수는 없다. 물론 그럴 필요도 없다.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가져와 무대예술이 지닌 미덕을 잘 버무려야 한다. 배우, 스태프에 이어 ‘제3의 배우’로 불리는 관객의 존재감도 중요하다. 1차적 관건인 ‘압축’면에서 합격점이다. 웹툰과 영화의 주요 장면을 잘 꿰어 맞췄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무대에서 보는 ‘영화 하이라이트’가 되어 버린다.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김수용의 악역 변신도 눈길
배우들의 호흡도 ‘한 호흡’이 느껴졌다. 원류환 역의 이규형과 리해랑 역의 김영철은 최근 막을 내린 ‘위대한 캣츠비 리부트’에서 캣츠비와 하운드로 명호흡을 보여 주었던 사이다. 코믹연기에도 강해 객석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주연이 아닌 조연 김수용이었다. 벙실벙실 웃고 있던 김수용에게 이런 지독한 면이 있었던가. 5446부대의 총 책임교관 김태원을 맡았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에 죽 그어진 칼자국이 섬뜩하다. 김수용은 “처음으로 악역을 맡았다. 사실은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처음 캐스팅 제의 때 받았던 대본보다 배역의 비중이 늘고, 노래가 너무 어려워 애를 먹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 김태원을 통해 배우로서 또 한 번 변화하고 싶다”며 ‘김태원’에 대한 애정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웹툰이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미 스토리를 알고 있으니 작곡가 허수현이 쓴 넘버들에 귀를 좀 더 기울여 보자. ‘고음킬러’ 김수용이 혀를 내둘렀다는 넘버도 궁금하지 않은가. “죽지마라. 그래도 죽어야 한다면 전설이 된 후에 죽어라.” 살아서 전설이 되고 싶었던 이들의 이야기.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이들의 이야기. 3월20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은밀하게’ 만날 수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