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복지공약 평가]<上>선거철이면 판치는 포퓰리즘
동아일보의 ‘20대 총선 복지공약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주요 3당의 공약들이 핵심을 비켜 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저출산 △청년실업 △고령화 등 주요 현안의 문제의식에 공감은 하고 있지만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는 ‘외과적 처방’보다는 ‘단기적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복지 수혜자들에게 지지와 환영을 받을 만한 내용이 다수 포함됐지만 장기적 처방으로서는 지속가능한 것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야당(더민주당, 국민의당)의 복지 공약들이 여당 공약보다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됐다.
전체 15개 공약 중 가장 나쁜 점수를 받은 더민주당의 ‘청년취업활동비 월 60만 원 6개월 지급’(3.7점)은 청년 일자리라는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려울 뿐 아니라 활동비를 지급한 6개월 이후의 대안도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미 경기 성남시가 청년배당(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마다 50만 원 지급)을 지역상품권을 통해 실시했지만 온라인 사이트에서 ‘상품권깡’ 용도로 거래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청년취업활동비 공약은 추가적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 미지수다”라며 “투입 재원에 비해 효과가 작고 가성비가 낮은 정책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더민주당의 ‘육아휴직 급여 통상임금의 40%에서 100%로 인상’(4.2점)도 비현실적인 공약이라는 평가가 다수였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부담이 대폭 늘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기존 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이목희 더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청년 취업활동비 지원과 육아휴직 급여 확대는 당 차원에서 면밀하게 재원 조달책까지 검토한 공약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범위에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새누리당의 ‘중저신용자 대상 1조4000억 원 대출’(5.3점)도 포퓰리즘 성격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치매 노인 장애인에게 웨어러블 통신단말기 지원’ 정책은 눈길끌기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출은 제대로 된 복지정책으로 보기 어렵고, 오히려 빈곤으로 더 빠르게 끌어들이는 측면이 있다”라며 “웨어러블 기기 지원도 실질적인 만성질환 관리로 이어지기 어려워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 재원 대비 체감도 클수록 좋은 평가
새누리당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조기 실시’(6.7점)는 정책 시행 시기를 2018년에서 올해 4월로 앞당기는 것만으로 월 150만 원가량의 간병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호평을 받았다. ‘경력단절 여성 국민연금 보험료 추후 납부 허용’은 실현가능성 지속가능성 등이 가장 높았고 최고 점수인 7.2점을 받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와 3대 비급여 개선책 중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간병비였는데 이번 정책이 연속성 측면에서 긍정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더민주당의 ‘남성 출산휴가 현 5일에서 30일까지 확대’(5.9점)도 저출산 정책으로서 정책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육아휴직 급여 확대와 같이 직접적인 정부 지출이 대폭 확대되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비교적 낮다는 점에서 좋은 공약의 요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 해묵은 논란 재연할 재탕 정책은 낙제점
박근혜 정부 들어 이미 사회적 갈등 비용을 지불한 공약들은 낮은 평가를 받았다. 더민주당의 ‘기초연금 재확대’(4.3점) 공약이 대표적이다. 더민주당은 현 정부가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20만 원 지급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며 재확대(하위 70%에 20만 원 지급)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3000cc 미만 자동차에 매겨지는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폐지’(6.1점)도 마찬가지다. 이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인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에 이미 포함돼 있던 것. 피부양자 무임승차 등 건강보험의 본질적 문제는 외면한 채 지역가입자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만 앞세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참신성보다는 집권당으로서 정책의 연속성과 실현 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책임 있는 공약들”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3당의 공약들이 한국의 재정 상황에서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는 반론도 나왔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3당의 공약들은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필요한 수준의 복지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로 몰아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임현석 기자
※ 설문에 응해주신 분
◇복지 분야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과 교수,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경제 분야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봉 세종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행정·정치 분야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교수,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