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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한국의 호킹들

입력 | 2016-02-18 03:00:00


“셀러브리티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딜 가든 나를 알아본다는 점이다. 선글라스와 가발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이돌이 아니라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유머 섞인 푸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은 숨겨도 휠체어까지 감출 방법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의 인기를 증명하듯 2004년 BBC 드라마 ‘호킹’에 이어 재작년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란 할리우드 영화도 나왔다.

▷서울대 이상묵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린다. 2006년 미국에서 차량 전복사고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참담한 절망과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점에서 호킹과 닮았다. 그제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그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가 화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다운 삶이란 좋은 집에서 잘 태어나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던지는 시련과 고난을 맞으며 꿋꿋이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애를 통해 이 같은 삶의 조건을 채울 수 있게 됐다는 데 만족합니다.”

▷이날 주인공들은 숨쉬기조차 어려운 장애를 이겨내고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 5명과 졸업생 4명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장애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지만 꿈과 희망마저 구속하지는 못한다”며 “불편하지만 장애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들려주었다. 실제로 그는 휠체어에 묶인 몸이 되면서 의미 있는 삶,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그의 긍정 마인드를 보면서 친구들은 “사고 날 때 머리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분을 다친 것 같다”고 농담할 정도다.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호킹은 말했다. “인간의 노력엔 어떤 한계도 없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린 뭔가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다.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생후 8개월 혹은 4세 때 찾아온 시련과 고통에도 ‘자기 앞의 생’에서 전력투구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호킹들이 바로 산 증거이다. 그들 앞에선 신체 건강한 청춘의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타령이 공허하게만 들릴 것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