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객 섭은낭’의 한 장면.
“‘자객 섭은낭’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저는 1년에 50편 정도의 영화를 볼 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이 영화는 영 견뎌내기 어려웠습니다. 너무 졸리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데다 최고의 찬사를 들은 작품이라 남들에게 ‘지루하다’고 감히 말하기도 겁이 납니다. 곧 일산에 있는 문화동호인 모임에서 이 영화에 대한 저의 감상을 한마디 해야 하는데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아,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명작 같긴 한데 무지하게 졸리다니요. 세계적 권위의 상도 받았습니다. 평론가들도 ‘무협영화의 새로운 경지’ ‘최면에 걸린 듯한 아름다운 구성과 우아한 균형감’ ‘스크린의 서예(書藝)’ 같은 극찬을 퍼붓습니다. 감독도 ‘비정성시’ ‘밀레니엄 맘보’ ‘카페 뤼미에르’ 같은 명작들을 만든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셴(侯孝賢)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작품이 갖는 무게에 얼마나 짓눌리겠는가 말입니다. 허우샤오셴. 이름부터가 진지하고 지루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이라면 졸리는 게 정상입니다. 액션도, 표정도, 대사도 별로 없고 섹스는 아예 없는데 어찌 106분을 견딘단 말입니까.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신경안정제 한 알 먹은 뒤 극세사로 만든 분홍색 홈웨어를 입고 따끈한 흙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절로 눈이 감긴단 얘기죠. 하지만 이런 명작을 보고 “푹 잤다”고 남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기엔 왠지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영화를 취침 없이 끝까지 관람해내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디테일들에 신경을 집중하십시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소리’입니다. 새소리, 풀벌레소리, 나무가 “타닥” 하고 타들어가는 소리, 자작나무 숲을 통과하는 바람소리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언어입니다. 특히 새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영화 초반부엔 “아악아악” “찌익찌익” 같은 소리가 나오다가 중반 이후에는 “호로록 호로록” “쪼로로록” 하는 소리가 주를 이룹니다. 정조(情調)에 따라 우는 새의 종류도 달라진다는 얘기죠. “졸지르르” 하는 시냇물소리도 고요하면서도 움직이는 인물의 내면을 짐작하게 합니다. “둥∼둥∼둥∼둥” 하면서 관객에게 마치 “자거라. 잠들거라. 깊이 잠들거라” 하고 최면을 거는 듯한 느린 북소리는 알고 보면 주인공의 심장 속에서 꿈틀대는 번뇌입니다.
아, 이렇게 쓰고 나니 더더욱 졸리는 영화로 느껴지네요. 그래도 졸음이 밀려오면 나와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다른 관객들을 살짝 훔쳐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우선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 시간에 여기에 앉아 이런 영화를 보고 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그 다음엔 ‘이 사람들도 나처럼 졸음을 참아가며 보고 있을까, 아니면 이 영화를 감탄하며 감상하고 있는 선택받은 영화광일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러고 나면 각성효과가 일어납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졸음이 밀려들 때 다른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자극받아 다시 공부에 열중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1만 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본다’는 ‘본전생각’도 잠을 쫓아내는 데 의외로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비법들이 모두 통하질 않는다고요? 그럴 땐 그냥 고요히 잠드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두 시간 가까이 숙면하는 데 1만 원이면 모텔 ‘쇼트타임’보다 싸지 않습니까. 감독의 권위에 눌려, 수상 실적에 눌려, 평론가의 화려한 수사에 눌려서 영화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속이는 행위인지 모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