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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한반도 평화협정 제안한 中, 김정은 요구대로 하라는 건가

입력 | 2016-02-19 00:00:00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7일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을 동시에 추진하는 협상을 제안했다. 왕 부장은 “갈등이 큰 문제는 모두 압박이나 제재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평화협정은) 각국의 주요 우려 사항을 균형적으로 해결하고 한반도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평화협정은 북한이 오매불망 미국에 요구해온 사안이다. 북한은 지난달 4차 핵 실험 나흘 뒤에도 노동신문을 통해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긴장 격화의 발생 근원인 미국 적대시 정책의 종식이 확인되면 미국의 우려 사항을 포함한 그 밖의 모든 문제는 순간에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정권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기 위해 자위적 핵 개발을 하는 것이므로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면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앵무새처럼 옮긴 것은 자국의 ‘안보 이익’과 전략적 목표가 북과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경 대북제재안을 놓고 중국에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돌리기 위해 내놓은 ‘물타기 제안’이다. 중국은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에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추진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평화 체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과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협정 용의를 밝힌 것도 북핵 선(先)폐기가 전제조건이었다.

더구나 현 국면에서 평화협정은 북의 핵 개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북-미 수교라는 ‘보상’에 주한미군 철수라는 김정은 정권의 ‘소원’까지 들어주자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리 북핵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해도 김정은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이른바 진보 인사를 중심으로 국내에도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며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5월 7일 독일의 항복문서 서명으로 종전됐지만 평화조약은 나오지 않았다. 베트남은 1973년 1월 파리평화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한 뒤 월맹이 월남을 무력 침공해 1975년 공산화됐다. 중국은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제언으로 북 도발의 본질을 흐릴 것이 아니라 북이 두 손 들고 핵을 포기하도록 강력한 제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