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국제부 기자
지난달 말 미국의 시사교양지 뉴요커가 한국의 문학 소비시장에 대해 따끔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일본 중국 등 이웃 국가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한국은 아직까지 무소식입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선정되는 10월이 되면 마치 연례행사처럼 시인 ‘고은’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뉴스에 오릅니다. ‘이번엔 가능할까’ 하는 마음으로 노벨문학상을 기대해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뉴요커는 한국의 문학 침체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매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의 작품조차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며, 한국 사람들이 ‘문학 읽기’ 자체를 즐기지 않는데 어떻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느냐는 지적이죠. 그나마 자기계발서, 조금 유명해진 소설 등은 제법 팔리는 편이지만, 시(詩)를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내면을 바라봐/외모에 속지마’(‘덜 익은 삼겹살’)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지옥철’) ‘연락하지 않겠다고/다짐하고 다짐해도’(‘야식집’) ‘끝이 어딜까/너의 잠재력’(‘다 쓴 치약’)’―하상욱
SNS 시에는 반전의 묘미가 숨어있습니다. SNS 시의 선구자 역할을 한 하상욱 씨의 시가 대표적입니다. 하 씨의 SNS 시는 본문만 읽어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특이하게도 맨 윗줄이 아닌 맨 아랫줄에 적힌 제목이 반전의 재미를 주는 포인트입니다. 다 쓴 치약을 낑낑대고 짜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을 저렇게 재치 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깔깔대고 웃게 됩니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물에서 재미의 요소를 찾아내는 점도 SNS 시의 특징입니다. 이환천 씨의 SNS 시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커피 믹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 씨는 ‘커피 믹스’를 보고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내 목 따고/속 꺼내서/끓는 물에/넣오라고/김부장이/시키드나.’ 또 다른 시 ‘월요일’에는 날짜를 의인화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토일요일/자기들이/미친 듯이/놀아놓고/내가 뭐를/어쨌길래/뭐만하면/내탓이고….’ 직장인이 한 잔씩 기울이는 ‘맥주’도 이 씨는 특이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언제부터/내 위상이/소주깔 때/타서먹는/탄산수가/되었는가.’
물론 읽다 보면 ‘이게 문학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시’라고 하면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 가장 적합한 단어를 쓰기 위한 고뇌, 음성과 뜻이 조화를 이룬 리듬감, 고급스러운 문체 등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리꾼들은 “고등학교 때 이해도 안 되는 어려운 시를 밑줄 쳐 가며 공부했는데, SNS 시를 읽고 나도 시를 써보고 싶어졌다” “출퇴근길 새로운 시가 올라오길 기다린다. 짧은 글이지만 배꼽 잡고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반응합니다.
김수연 국제부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