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가장
서울대생 가장의 감독적인 사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사연은 18일 오후 12시 30분에 페이스북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왔다.
사연은 이렇다. 글쓴이는 12세 때 부모를 버스 교통사로 잃었다. 부모는 모두 보육원에서 자랐고 일가친척이 없다. 그래서 그에겐 7세, 2세 동생들만 남았다.
그는 5평짜리 단칸방에서 살면서 동생들을 챙겼다. 새벽에는 배달을 하고 공부를 했다. 학교에서는 장학금을 줬고, 정부 수급자 지원금을 받아 동생 분유, 기저귀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집주인 아주머니 명의로 한달에 5만원씩 저축도 했다.
그는 아주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가장으로의 현실이 팍팍했지만 공부를 접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균등 전형’으로 서울대학에 입학했다. 과외로 한달에 60만원의 수입이 생겼고, 학교 졸업을 앞두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큰 동생이 고3, 작은 동생은 중학교에 입학한다. 글쓴이는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물적, 심적 도움을 준 이 아주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누리꾼들은 이 사연에 폭발적인 반응이다. 페이스북 좋아요 수가 26,000건을 넘었고 공유도 950건(19일 오후 1시)을 넘었다.
하지만 이 사연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사연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해당 게시물 댓글을 통해 수소문을 하고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다음은 페이스북 사연 전문이다.>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말이 나왔다.
“야, 근데 너는 군대 안 가냐?”
“군대? 가야지.”
나는 그리고 서둘러 잔을 들었다.
“야, 잔 비었다 잔.”
나는 군대를 안 간다.
못 간다고 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쓰기에는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가장이다. 엄마아빠는 둘 다 고아라고 했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고 결혼했다고.
그리고 내가 열두 살 때, 두 분은 버스사고로 돌아가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었을까, 일곱 살짜리 동생과 두 살짜리 동생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새벽엔 배달을 하고, 다섯 평짜리 방에서 셋이 잤다.
학교에서는 장학금도 줬다. 수급자비도 정부에서 줬다.
분유, 기저귀, 대부분 그런 걸 사는데 썼다. 물론 그 때는 지금보다는 쌌다.
그래도 꼬박꼬박 저축도 했다. 한 달에 오만 원, 많은 돈은 아니었다.
사실 그것도 주인집 아줌마 명의였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아줌마가 나를 앉혀두고 말했다.
“너, 대학 갈 거니?”
“아, 일하려고요.”
“아니야, 잘 들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 그래서 과외를 하렴.”
어린 나이에 몸이 상하면 나중에 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했다.
몸도 커서 다섯 평에서 자기도 힘들 텐데, 돈 많이 벌어서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라고.
세상에 착한 사람이 있다는 걸 나는 이 아줌마 덕에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믿기 어렵게도 이 대학에 붙었다. 물론 기회균등 전형이었지만.
과외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한 달만에 내 손에 6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생활비 장학금을 줬다. 정부에서도 아직 지원을 끊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아줌마한테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그리고 동생들과 며칠 전에 아줌마를 찾아갔다.
뭘 사갈까 고민하다가 고구마케이크랑 음료 세트를 양 손에 들고 갔다.
아줌마는 고생했다고 우리 등을 다독여주셨다.
큰동생은 이제 고삼이다. 작은동생은 이제 중학생이 된다.
그렇게 계산하더니 아줌마는 정말 빠르게 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괜히 눈물이 났다. 결국 우리 넷은 울었다.
이 자리를 빌어,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아줌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저는 이제 졸업을 합니다 아줌마. 다 아줌마 덕분입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