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사기범이 대포통장 주인의 체크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더라도 통신사기피해 환급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전원합의체(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9일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가로 챈 혐의로 기소된 중국 국적의 A 씨(51)에게 징역 1년 6월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통신사기피해 환급법 위반 혐의는 원심의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통신사기피해 환급법은 보이스피싱 범죄 등 전화금융사기에 대한 처벌과 피해 환급을 위해 만든 특별법이다.
A 씨는 지난해 4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은행에서 대포통장 체크카드로 11차례에 걸쳐 총 1130만 원을 인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보이스피싱의 조직원들은 피해자에게 자신들을 대출회사 직원으로 속인 뒤 “대출을 받으려면 수수료와 인지세를 먼저 입금해야 한다”고 말하며 돈을 가로 챘다.
통신사기피해 환급법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목적으로 자금을 송금하거나 이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처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직접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만약 A 씨가 대포통장을 이용해 이 돈을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송금하거나 이체했다면 해당 법을 위반한 것이 되지만 단순히 돈을 빼낸 것은 죄가 아니라는 뜻이다. 앞서 1, 2심 재판부도 A 씨가 현금을 인출한 행위는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자금이 대포통장 등 사기에 이용되는 계좌로 송금 및 이체되면 전기통신사기 행위가 끝나는 것이며 그 후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는 범인들 내부에서 이뤄지는 행위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김준일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