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저녁 동해안에서 통발어선에 잡혀 포항 구룡포로 실려 왔다. 아침 일찍부터 위탁판매장에 누워 경매를 기다리다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 바다로의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게걸음으로 안간힘을 써봤지만 다시 붙잡혔다. 나 정도 크기의 대게는 2만∼3만 원에 팔리니 주인이 쉽게 놔 줄 리가 없다.
그래도 잠깐 여유를 내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가 죽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왕 죽을 바에야 나를 제대로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울진 앞바다는 ‘대게의 고향’이다. ‘동해의 이어도’라는 왕돌초(礁)가 있다. 배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이 암초는 동서 21km, 남북 53km가량으로 서울 여의도의 10배 크기다. 가장 얕은 곳이 5m, 깊은 곳은 500∼600m 정도다.
울진의 배도, 영덕과 포항의 배도 대개 이 왕돌초 근처에서 나를 잡는다. 포항 구룡포 배가 잡으면 구룡포대게, 영덕 배가 잡으면 영덕대게, 울진배가 잡으면 울진대게가 된다. 영덕이 울진보다 대게의 명산지로 더 알려진 것은 과거 교통이 편리한 영덕이 집산지였기 때문.
사람들은 주로 찜을 해서 먹는다. 찜에도 요령이 있다. 찜하기 전에 미지근한 물로 기절시킨 다음 등딱지가 아래로 가도록 뒤집어서 쪄야 맛있다. 등을 위로 하면 찌는 동안 맛있는 내장이 쏟아지고 나도 살려고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대게의 원조를 놓고 울진과 영덕이 오랫동안 논쟁을 벌이고 있다.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인기의 비결은 역시 맛과 영양이다. 나를 먹으면 몸에 좋은 필수아미노산 등 여러 영양소를 쉽게 섭취할 수 있다. 소화가 잘돼 몸이 허약한 사람들과 노인들에게도 좋다. 또 내 껍데기에는 키틴과 키토산 성분이 많아 체내 지방 축적을 막아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연유다.
나는 비싼 몸이다. 많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어업기술의 발달과 유통체계 개선으로 값이 많이 내려갔다. 그래도 수요보다는 공급이 달리다보니 유사품인 홍게가 등장했다. 홍게는 색깔이 유난히 붉은색을 띤다고 해서 붉은대게라고도 한다. 홍게는 대게보다 수심이 더 깊은 바다에서 산다. 일년 내내 잡을 수 있지만 껍데기가 딱딱하고 짠맛이 난다. 홍게 맛을 아는 이들은 입맛만 다시다 끝나는 대게보다는 값이 적당한 홍게를 선호한다.
13일 오전 포항 구룡포항의 대게위탁판매장. 가장 귀한 박달대게에는 금색 라벨을 붙인다(가운데 사진). 척 들어보면 무게를 알 수 있다. 550g 정도면 중짜.
포항시를 비롯해 경주, 영덕, 울진, 울릉 등 경북 동해안의 5개 시군은 매년 6월부터 5개월 동안은 포획을 전면 금지한다. 이때가 대게의 산란기. 해마다 줄고 있는 나와 내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금어기가 아니더라도 몸통 크기가 9cm 미만의 어린 대게는 절대로 잡으면 안 된다.
27일부터 나흘간 울진에서, 3월 31일부터 나흘간 영덕에서 따로따로 대게축제가 열린다. 이 한 몸 바쳐 여러분의 입을 즐겁게 해줄 각오가 되어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 번쯤 대게나들이에 나서보심은 어떨지.
포항에서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