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리스본행 야간열차(파스칼 메르시어·들녘·2014년) 》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좋아하는 여학생인 소연의 권유로 농구를 시작한다. 농구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그는 ‘풋내기 슛(레이업 슛)’을 2만 번쯤 연습하며 실력을 쌓아간다. 강백호가 스펀지처럼 농구 기술을 흡수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뛰어난 신체조건 덕분이었다. 만약 소연이 농구가 아닌 꽃꽂이나 서예를 권했다면 강백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 그의 재능은 빛바랜 사진첩처럼 먼지 쌓인 채 잊혀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산다. 어떤 씨앗은 햇빛과 물을 만나 싹을 틔우지만 대부분의 씨앗은 깊숙한 곳에 묻혀 그저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 가능성의 씨앗을 하나둘 묻어가는 일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 지도에서 처음 보는 도시의 이름을 외우며 오지 여행을 꿈꿨던 내가 낯선 곳에서 자는 걸 끔찍하게 여기는 어른이 된 것처럼.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면 잠시 ‘지금의 나’에게서 도망쳐 보는 건 어떨까. 그레고리우스처럼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도 좋다. 그저 평소에 해본 적 없는 소소한 일탈도 메마른 삶에 촉촉함을 더해줄 수 있다. ‘나답지 않은 행동에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자. 오래전부터 당신 안에서 기다려온 작은 씨앗이 비로소 싹을 틔운 것뿐이니까.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