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천경자 화백 차녀 친자확인소송

천경자 화백의 호적(가족관계등록부)에 오르지 못한 유족들이 제기한 친자확인소송은 천 화백의 저서 등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 만큼 법원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송을 낸 김정희 씨 등은 위작(僞作) 논란이 있는 ‘미인도’가 천 화백의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측을 상대로 한 민형사상 소송을 예고했다. 나아가 남은 자녀들 간에 모친의 유작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미국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대 미술과 교수와 막내 고 김종우 씨의 아들 등이 제기한 친생자관계 확인 소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이 맡는다. 결론은 빠른 시일 내에 나올 수 있다. 생모와 자녀 사이의 친자 확인은 출산 사실 자체만 증명되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법률상 친족관계가 발생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 등이 자녀라는 것은 천 화백 스스로 밝힐 정도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법조계에선 “사진이나 주변인 진술, 천 화백이 쓴 수필 등 다수의 글에 많은 증거가 있어 유전자 검사 없이 법원의 인용 결정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미인도가 위작이 아니라는 것은 어머니 개인에 대한 모독이자,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점을 밝혀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인도 위작 사건은 1991년 4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전국을 돌며 미술품을 소개하는 전시회에 미인도가 등장했고,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은 감정 등을 통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교수 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며 이 그림이 들어간 엽서, 달력 등을 제작 판매해 수익사업을 한 만큼 친자관계 확인을 받는 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 및 저작권침해 혐의 등으로 형사 고소도 병행할 예정이어서 미인도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검찰의 수사도 예상된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천 화백 작품의 호당 평균가격은 1700만 원 선이다. 여성화가로는 1위다. 2009년 천 화백 작품 중 최고액인 12억 원에 거래된 1978년작 ‘초원Ⅱ’를 포함해 ‘원’, ‘막은 내리고’ 등의 작품들이 10억 원 안팎에 거래됐다.
배석준 eulius@donga.com·신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