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화자는 자꾸 한눈을 판다. 그의 걸음을 붙드는 건 작고 보잘것없어서 사는 데는 별 쓸모가 없는 그런 존재들이다. 크고 힘센 것들의 뒤편 후미진 곳에, 숨은 듯 버려진 듯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이들의 약함과 아름다움과 처연함에 붙잡혀 멈춰 서고 마는 이 사람은 거의 시인 자신 같다. 그러면서 그는 시를 쓰게 되었고, 그러다가 번듯한 직장 하나 얻지 못했고, 그래서 늙은 어머니의 애잔한 근심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의 눈에는, 씀바귀 꽃과 제비들과 노점 할머니와 고향의 어머니가 전혀 다르지 않다. 한 식구다. 그러므로 약하고 소외된 것들을 만나면 대책 없이 또 피가 따뜻해지는 이 사람은, 세상의 온갖 경쟁에서 뒤처진다 해도 멈추지 않을 수가 없다. 그를 멈추게 한 그 힘이, 바로 그를 다시 걷게 하고, 살게 해주는 힘이니까. 허겁지겁 달리던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날 달리게 하는 힘이 과연, 언젠가는 날 멈추게도 살게도 해주는 따뜻한 힘인 걸까. 봄이 오면 소개하려고 아껴두었던 시를 영하의 날씨에 내보인다. 봄날의 온기를 미리 꾸어 와, 이곳저곳 좀 덥혀야 할 것 같으니까.
이영광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