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內 소심한 일탈… ‘약’팔고 ‘약’빠는 사회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 이파리, 이파리, 그 이파리
병에 상품명보다도 크게 새겨진 특이한 이파리 마크부터 눈에 들어왔다. 단풍잎 같았다. 계산대 옆 대학생 김승철 씨(27)가 거들었다. “딱 대마 잎이잖아요. 이거 약 빨고 만든 음료수라니까.”
이 음료를 출시한 보해양조 나종호 팀장은 손사래를 쳤다. “우리 회사에서 냈던 ‘잎새주’(소주)의 단풍 마크를 가져온 거예요. 중독성이 강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그리 인식하는 것 같아요.” 우리와 달리 지구(해외) 문화에 익숙한 친구들은 입을 모았다. “대마네요. 단풍잎 같지만, 대마예요. (제조사가) 노렸어요.”
‘약 빤’이란 표현도 흔해졌다. ‘약 빤 기사’ ‘약 빤 드라마’…. 향정신성 약물이 금지된 대한민국 국민이 정말 이렇게 약을 많이 흡입한단 말인가? 이 정도면 죄다 외계인…? ‘약 빨았다’는 표현은 ‘제정신으론 못 만들었을 듯한 콘텐츠’를 가리킨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놀란 가슴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맘을 달래려 맥줏집에 들어갔다. 메뉴판에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대마맥주’…!! 조심스러웠지만 마음속에서 격렬한 체험 욕망이 솟구쳤다.
55분 동안 세 병째. 우리는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하지만 ‘이파리’의 효과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파리’ 흡연 경험이 있는 A 씨를 불렀다. 다음은 그의 소감이다.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내쉬니 나긴 하네요, 스멜(냄새)∼. 그것뿐이에요. 근데 대마초 즐겨 했던 사람은 이 향기 맡고 문득 한 대 생각날 수는 있겠지. 하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가니 김성진 마약정책과장이 서 있었다. “대마의 씨와 뿌리, 성숙한 줄기에는 환각 성분이 없어요. 씨로 만든 맥주가 유통 가능한 까닭이죠.”
○ 마약곱창, 히로뽕커피… 중독 권하는 세상
쓱닷컴(신세계쇼핑몰)에 들어가 ‘마약’이라 치니까 5개 카테고리, 77개 상품이 검색됐다. 헉! ‘마약청바지’ ‘마약방석’ ‘마약 스페셜 2인 세트’….
“아재들, 촌스럽게! 붕어빵에 붕어, 히로뽕 커피에 히로뽕, 마약 치킨에 마약 든 걸로 믿는 건 아니겠죠?”(대학생 이정연 씨)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법무담당 K 씨는 걱정스러워 보였다. “마약류를 멀리하고 위험하게 보는 사회 인식이 약해지고 있어요.” 맞는 말일까.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마약사범은 2011년 5477건에서 지난해 7302건으로 33.3% 증가했다.
이 통계가 ‘마약××’ 열풍과 실제 마약사범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이론적 분석을 원했다. 현대 사회 일상 영역에서의 ‘상상력’을 주제로 한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72)의 포스트모던 이론도 들여다봤다. 중독, 즉 금기시된 것에 대한 일탈은 개인에게 마치 축제와 같은 몰입감과 해방감을 준다는 것이다.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를 만났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세요. 입시, 취업… 뭐 하나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어요. 중독 권하는 문화는 현실을 잊는 방법으로 생긴 거죠. 금기인 듯 금기 아닌 것을 제도권 안에서 즐기게 되는 겁니다.” ※결론: 한국의 마약××=진짜 아닌 외계문명.
김윤종 zozo@donga.com·임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