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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살다]사람과 자연을 껴안은 공간

입력 | 2016-02-24 03:00:00


전남 장성군 한옥마을에 살고 있는 세경 씨 가족. 장세경 씨 제공

장명희 한옥문화원장

세경 씨는 한옥마을에서 산다. 한옥에 별 관심이 없던 세경 씨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광주광역시의 테라스아파트에서 마당을 한껏 누리며 살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4년간 살다가 일반 아파트로 옮기니 가족 모두 마당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때부터 단독주택을 생각하던 중, 광주와 이웃한 전남 장성군 황룡마을에 한 한옥 개발 회사가 본보기집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황룡마을은 전남개발공사가 ‘살기 좋은 농촌 지역 주거 모델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곳이다. 기반 시설을 비롯하여 도서관, 유치원, 운동 시설, 의료기관 등의 시설을 잘 갖췄다. 마을이 광주를 감싸는 외곽도로 진입로 근처에 있어 광주 시내 어디라도 40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접근성도 좋다.

한옥은 추울 거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본보기집은 따뜻했고, 내부 공간은 편리하면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한옥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도 좋았다. 그 후로 인터넷에서 한옥을 계속 검색하면서 한옥을 알아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한옥이 매력적이었다 해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한옥살이’를 실행하지 못했을 텐데, 살고 있던 109m² 아파트를 판 돈에 전남도의 ‘행복마을 지원금’ 4000만 원을 보태니 390m²의 터에 지하와 작은 다락방이 딸린 96m² 규모의 한옥을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세경 씨는 한옥마을 거주를 결정했고, 본보기집에 동행했던 친정엄마도 이웃이 됐다.

감기를 달고 살던 세경 씨의 세 아이는, 외투도 챙겨 입지 않고 쉴 새 없이 집과 마당을 오가며 뛰어놀았는데도 이번 겨울에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다. “외부와 연결돼서 그런지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더 넓게 느껴져요. 자연과 연결된 느낌이랄까.” 모든 면에서 상상했던 이상으로 만족스럽다고 세경 씨는 즐거워한다.

좋은 점은 더 있다. 친정이 이웃에 있으니 아이들도 맡길 수 있을뿐더러, 부모님 역시 아이들 드나드는 재미에 즐거워하시고 세경 씨 자신도 든든하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에겐 가구를 만드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고, 신춘문예 당선 작가를 비롯하여 각기 다른 일에 종사하는 이웃도 두게 되었다. 이제 마을 형성의 초기이니, 앞으로 가구 수가 늘어나면 마을의 구성원들도 점점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기대도 한다.

최근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을 타고 여기저기서 ‘웰빙주택’ 한옥마을을 조성해 분양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일이지만, 효율에 초점을 맞추어 평평하게 깎아내린 터에 격자형으로 필지가 분할된 한옥마을들을 보는 아쉬움은 크다.

현대 한옥마을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 그 해답은 ‘사람들은 왜 한옥마을에 살고 싶어 하는가’에 있을 터이다. 한옥마을 거주 희망자들 중 가장 많은 이가 손꼽는 이유가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한옥들이 모여 이루는 조형미가 좋아서’다. 내 집만 한옥이 아니라 이웃이 모두 한옥인 곳에서 사람과 집, 사람과 마을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 연결되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주거지로 한옥마을을 원하는 것이다.

교통 접근성이 중요한 현대인들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가 좋다고 산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며 전통 마을들도 평지에 자리 잡은 곳이 많다. 그렇더라도 지형을 살리며 최소한의 손길만 더하는 선조들의 건축 정신은 ‘자연과 연결되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주거지’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형의 자연스러운 굴곡을 그대로 살려 마을을 감싸 안는 듯한 곡선은 사람의 마음에 쉴 여유를 주고, 부드럽게 굽이져 흐르는 물길은 마을에 생기를 준다. 지형 따라 난 길들이 있어 마을은 지루하지 않은 곳이 되고, 바람 골을 고려한 집의 배치는 자연 통풍과 함께 에너지 사용을 줄여 준다.

이렇게 조성된 마을에, 따뜻하고 편리한 한옥들이 지어지고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하며 가구 만드는 할아버지와 글 쓰는 작가 등 저마다 삶의 모습이 다른 이웃들이 모인다면, 현대의 한옥마을은 단순히 한옥의 집합체가 아닌, 전통 마을의 가치를 이어받은, 삶을 나눌 공동체로 형성돼 나갈 것이다.

장명희 한옥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