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대북제재안 중대 진전”]
중국을 끌어들여 북한에 실질적인 고통을 줄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을 이끌어내려는 미국. 이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갖추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막아보려는 중국.
23일 워싱턴에서 만난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며 상대방의 양보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기 위해 땀을 흘렸다. 양측은 대북제재와는 별도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서로 노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국은 “6자회담에서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며 북한을 대변했고, 미국은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6자회담의 필요성은 서로 인정하면서도 회담에서 논의할 의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케리 장관은 안보리 대북제재에 대한 중국의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반도 사드 문제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드 배치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논의하고 있다”며 “우리는 사드 배치에 급급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는 “사드 배치와 대북제재는 별개”라는 기존 한미 양국 정부의 설명과는 결이 다소 다른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9일 워싱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과 면담한 뒤 “사드 문제를 대북제재와 연계하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케리 장관의 이날 뉘앙스 변화는 전략적 차원(사드 배치 유보나 포기)이라기보다 전술적 차원(중국의 대북제재 참여 유도)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케리 장관은 이날 왕 부장에게 “북한의 위협과 핵문제로 인해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만 이룰 수 있다면 사드는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더 강하게 제재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고, 그래서 한반도에 사드 배치가 필요 없어지는 ‘모범답안’을 제시한 셈이다.
지난달 27일 베이징을 찾아간 케리 장관이 왕 부장은 물론이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까지 만나고도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온 것처럼 대북제재와 사드 배치를 둘러싼 두 외교 수장(首長)의 담판도 이날 미완의 상태로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향후 유엔 안보리 결의안 내용과 이후 미국의 사드 관련 움직임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두 장관은 대북제재안 내용에 대해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양측이 큰 틀의 제재 방향과 수위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았지만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미세한 견해차가 있다는 뜻이다. 두 장관은 당초 예상 시간을 40분 넘겨 2시간 가까이 회담했다. 다만 두 장관은 한목소리로 안보리 대북제재가 곧 타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대해 케리 장관은 “단순히 북한의 행동에 대응하는 것 외에, 유엔 내 다른 나라들과 함께 하고, 6자회담을 통해 상호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며 6자회담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 테이블에 나오고 협상에 응한다면 궁극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며 중국이 제안한 ‘비핵화, 평화협정 동시 논의’ 제안을 일축했다.
워싱턴=박정훈 sunshade@donga.com·이승헌 특파원